경제-산업사회

‘밥심’에서 식량안보까지…쌀 한 톨에 담긴 한국인의 삶

한국인의 주식인 쌀은 한때 생존과 풍요의 상징이었고, 오늘날에는 식량안보의 핵심 자원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AI 생성 이미지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보건학박사·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

이 말에는 한국인의 오랜 생활사가 담겨 있다. 쌀은 단순한 탄수화물 공급원이 아니었다. 끼니였고 생계였으며, 때로는 부와 가난을 가르는 기준이었다. 밥을 먹었느냐는 인사는 곧 안부였고, 흰쌀밥 한 그릇은 한때 특별한 날에나 맛볼 수 있는 음식이었다.

쌀은 오랫동안 한국인의 주식이었다. 밥의 높임말이 ‘진지’이고, 임금에게 올리는 밥상을 ‘수라상’이라 부른 것도 밥이 한국인의 생활과 문화에서 차지한 위치를 보여준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익숙하게 먹는 흰쌀밥은 불과 몇 세대 전만 해도 풍요의 상징이었다. 1950~60년대까지 쌀은 늘 부족했다. 정부는 밀가루 음식을 먹도록 분식을 장려했고, 서민 가정에서는 명절이나 생일에야 흰쌀밥을 넉넉히 먹을 수 있었다.

6·25전쟁은 쌀의 가치를 더욱 극적으로 보여준다. 80kg 한 가마 가격이 1949년 9.5원에서 1953년 484원으로 약 50배 뛰었다. 전쟁과 가난의 시대에 쌀은 돈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쌀을 확보하는 것이 곧 가족의 생존을 지키는 일이었다.

경제성장과 농업생산 증가로 쌀 부족 시대는 지나갔다. 식탁도 달라졌다. 빵과 면, 육류와 각종 가공식품이 일상으로 들어오면서 쌀 소비는 줄었다. 한때 먹고 싶어도 충분히 먹지 못했던 쌀이 이제는 남아 생산량을 조절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정부가 매년 8월 18일을 ‘쌀의 날’로 정한 배경에도 이런 변화가 있다. 한자 쌀 미(米)를 풀면 八·十·八이 된다는 의미와 함께 농민의 손길이 쌀 한 톨을 생산하기까지 수없이 필요하다는 뜻을 담았다. 감소하는 쌀 소비를 되돌아보고 쌀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자는 취지다.

쌀 산업 역시 변하고 있다. 소비자의 입맛에 따라 삼광·일품·신동진·새청무 등 다양한 품종이 개발됐고, 지역과 품종에 따라 맛과 찰기, 향을 구분해 쌀을 선택하는 시대가 됐다. 과거에는 ‘쌀이 있느냐’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어떤 쌀을 먹느냐’를 따진다.

최근에는 ‘가루쌀’도 주목받고 있다. 일반 쌀을 갈아 만든 쌀가루와 달리 처음부터 가루로 활용하기 쉽게 개발된 품종이다. 물에 불리는 과정 없이 제분할 수 있어 빵과 면 등 밀가루 대체 식품에 활용할 수 있다.

가루쌀이 주목받는 이유는 식생활 변화뿐 아니라 식량안보와도 연결된다. 우리나라는 매년 약 200만t의 밀을 수입하고 있다. 이 가운데 10%만 국내산 가루쌀로 대체해도 약 20만t의 수입을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국의 식량 문제는 역설적이다. 쌀은 비교적 높은 자급률을 유지하고 있지만 전체 곡물자급률은 낮다. 사료용을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약 20% 수준이다. 식량자급률도 2010년 54.1%에서 2024년 47.9%로 낮아졌고, 곡물자급률은 같은 기간 27.6%에서 21.6%로 떨어졌다.

밀 자급률은 여전히 매우 낮다. 콩의 자급률은 다소 높아졌지만 상당수 곡물을 해외 공급망에 의존하는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전쟁과 국제분쟁, 기후변화가 일상적인 위험이 되면서 쌀의 의미도 다시 달라지고 있다. 과거 쌀이 개인과 가족의 생존 문제였다면 이제는 국가의 식량안보 문제다. 국제 공급망이 흔들리고 곡물 수출국이 수출을 제한하면 돈이 있어도 필요한 식량을 구하지 못할 수 있다.

따라서 쌀 생산 기반을 유지하고 일정 수준의 가격을 보장하는 것은 단순한 농민 지원정책만으로 볼 수 없다. 과잉 생산 시 시장격리와 해외 식량원조를 활용하고, 기초 식량의 정부 비축을 충분히 유지하는 문제도 국가안보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쌀 한 톨에는 한국 현대사의 변화가 압축돼 있다. 굶주림의 시대에는 생존이었고, 산업화 시대에는 풍요의 상징이었다. 오늘날에는 소비 감소와 농촌의 위기를 보여주는 동시에 국제정세 속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필자는 1939년생으로 내년에 미수(米壽), 88세를 맞는다. 한자 米를 八·十·八로 풀어 88세를 미수라 부른다. 회갑과 고희, 팔순에 이어 구순에도 무료급식 ‘밥퍼’ 봉사와 사회 환원을 이어갈 생각이다.

한 그릇의 하얀 쌀밥은 누군가에게는 흔한 일상의 식사지만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귀한 한 끼다. ‘밥이 보약’이라는 옛말은 단순히 영양만을 뜻하지 않는다. 한국인에게 밥은 생존과 나눔, 공동체와 국가의 안보까지 이어져 온 삶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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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윤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서울대 보건학박사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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