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그때는 형이 내 글 속에, 지금은 내가 형의 글 속에”…52년을 건넌 두 친구

이 글은 황건 인하의대 명예교수가 2026년 8월 20일 <아시아엔>에 쓴 ‘오래된 친구와 걷는 길, 먼저 떠난 사람들을 만나다’와 글에 등장하는 친구가 황 교수에게 보낸 개인 메시지, 이후 필자와 황 교수의 전화 대화를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52년 전 교내 문학상 수상작 ‘종소리’와 두 사람의 학창시절 인연, 친구의 성장 과정과 호주 정착 이후의 삶에 관한 일부 내용은 녹취를 토대로 정리했다. <편집자>

황건(왼쪽) 교수와 후배 문진섭 대표. 지금 호주는 겨울

황건 교수의 글 ‘오래된 친구와 걷는 길, 먼저 떠난 사람들을 만나다’를 처음 읽었을 때는 시드니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우정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1일 아침, 황 교수가 글 속 ‘오래된 친구’에게서 받은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읽는 내내 마음이 뭉클했다. 메시지를 다 읽자마자 황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20일 밤 시드니를 출발해 21일 아침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승용차를 몰아 귀가하는 중이라고 했다.

황 교수와 통화를 마친 뒤 친구가 보낸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그러자 앞서 읽었던 황 교수의 글이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그 글 속에는 52년 전의 두 소년이 숨어 있었다. 한 소년은 소설을 썼고, 다른 소년은 그 소설의 주인공이 됐다. 세월은 두 소년을 각자의 길로 멀리 데려갔다. 한 사람은 한국에서 의사가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바다를 건너 호주에 삶의 터전을 잡았다.

그렇게 반세기가 훌쩍 흘렀다.

황 교수의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시드니 공항에 도착하자 고등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낸 한 살 아래 친구가 마중을 나왔다. 해양대를 졸업하고 호주에 정착한 친구였다. 그는 황 교수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다며 쿠지(Coogee) 해변으로 데려갔다.”

두 사람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해변을 걸었다. 학창시절 읽었던 책과 친구들, 사랑과 죽음,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런데 이 글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사연은 따로 있었다. 친구는 고등학생 때 문학에 빠져 있었다. 톨스토이의 <부활>을 읽었고 헤르만 헤세를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설 한 편을 썼다. 제목은 ‘종소리’. 재학중이던 보성고등학교 인경문학상을 받은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 소설의 남자주인공 모델이 바로 황건이었다. 나는 이 대목에서 한동안 멈추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환자를 치료해온 황건 교수와, 시드니에서 사업을 일구며 살아온 그의 친구. 두 사람에게도 한때 문학을 읽고 소설 속 인물이 되던 소년 시절이 있었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 소설을 둘러싼 또 하나의 인연이다. ‘종소리’에는 여자주인공의 모티브가 된 여학생이 등장한다. 그러나 소설을 쓴 친구가 실제로 마음을 두었던 사람은 그 여학생의 친구였다고 한다. 그는 결국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영락교회 영어성경반에서 만난 그 사람과 결혼했고,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다.

고등학생 때 만난 사람과 한평생을 함께 산다는 것. 말로 하면 한 문장이지만 그 안에는 수십 년의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이 들어 있다. 친구는 보성고를 거쳐 해양대학교에 진학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 일찍 자신의 길을 찾아 바다로 향했다. 이후 호주에 정착해 사업을 일구었다. 지금은 시드니에서 교회 장로로 봉사하며 캄보디아 선교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고 한다. 두 사람의 출발점은 비슷했지만 인생의 길은 달랐다.

문진섭 대표와 황건 교수. 사진은 문 대표의 면세점 옆에 있는 한국문화원 안 집현전에서 찍었다.

한 사람은 의사가 되어 환자를 만나고 의학을 연구했다. 다른 사람은 바다를 건너 사업가가 됐다. 한 사람은 한국에, 다른 한 사람은 호주에 삶의 터전을 잡았다.

그런데 세월이 모든 것을 바꾸지는 못했다. 황 교수의 글이 나온 뒤 친구가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52년 전, 한 사람은 「종소리」라는 글 속의 주인공이었고, 또 한 사람은 그 글을 쓰던 소년이었잖아.” 나는 이 문장이 참 좋았다.

친구는 이어 이렇게 썼다. “그 두 소년이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52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건너뛰어 갑자기 ‘툭’ 하고 지금의 시간 속에 내던져진 것처럼 느껴졌어. 정신 차리고 보니 둘 다 노인이 되어 시드니 바닷가를 나란히 걷고 있는 거야.”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어린 시절의 자신이 사라졌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어쩌면 그렇지 않은지도 모른다. 친구의 표현처럼 소년은 주름진 얼굴과 희어진 머리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순간 다시 나타난다. 몇십 년 만에 만난 친구와 이야기를 시작하면 어느 순간 말투도 표정도 옛날로 돌아가는 경험을 우리는 알고 있다.

친구는 황 교수 글의 마지막 문장을 특별히 기억했다. “바다는 그 모든 시간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답했다. 그날 자신들이 걸었던 것은 쿠지 해변길만이 아니었다고. 소년이었던 시절부터 오늘까지 두 사람이 지나온 시간을 천천히 되짚어 걸었던 것 같다고.

나는 이 대목에서 황 교수의 원래 글과 친구의 편지가 비로소 하나가 되었다고 느꼈다.

황 교수는 쿠지 해변을 걸으며 전쟁에서 숨진 인명구조원들을 기리는 ‘Fallen Lifesavers Memorial’과 발리 폭탄테러 희생자 추모비 앞에 섰다. 살아 있는 두 노인은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이름 앞에서 자신들이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뒤편에는 52년 전의 두 소년이 서 있었다. 한 소년은 소설을 썼다. 한 소년은 그 소설 속에 들어갔다.

52년 뒤에는 자리가 바뀌었다. 그때는 친구가 쓴 ‘종소리’ 속에 황건이 있었지만, 이제는 황건이 쓴 글 속에 그 친구가 있다. 친구도 그것을 알아차렸다.

“그 시절엔 형이 내 글 속에 있었는데,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은 내가 형의 글 속에 있네.”

문학이란 어쩌면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사람을 기억 속에 남겨주는 일. 그리고 언론도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빠르게 지나가는 오늘의 사건을 기록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평범한 한 사람의 삶과 그 사람 사이에 이어진 인연을 기록해 시간이 쉽게 가져가지 못하도록 붙잡아두는 일 말이다.

친구는 이제 사업의 많은 부분을 아들에게 넘기고 자신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고 했다. 어린 시절 포항에서의 기억부터 학교생활과 청년시절, 바다와 호주에서의 삶까지 떠오르는 장면들을 100꼭지쯤 써 한 권의 책으로 묶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나는 꼭 그렇게 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열일곱 살 무렵 ‘종소리’를 썼던 소년에게는 아직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52년은 긴 시간이다. 그동안 부모가 떠나고, 친구가 떠나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가정을 만들고, 직업을 갖고, 실패하고 성공하고, 몸이 늙어간다.

그러나 친구의 편지 마지막 부분을 읽으니 세월이 끝내 가져가지 못하는 것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은 참 많은 것을 바꾸고, 또 많은 것을 데리고 가는데 끝내 가져가지 못하는 것도 있나 봐. 인연 같은 것 말이야.”

그렇다. 52년 전 소설 속의 두 소년은 사라지지 않았다. 한 사람의 기억 속에, 한 편의 소설 속에, 그리고 이제 한 편의 기사 속에 남아 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시드니 바닷가를 함께 걸을 것이다. 그때도 바다는 아무 말 없이 그들을 바라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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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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