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7월 2일, 미국 캘리포니아 카리조 플레인 국립공원 인근의 아스팔트 위에서 이상묵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사경을 헤맸다. 야외 지질조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개조 밴 차량이 뒤집히면서, 동승했던 제자 한 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는 척추를 다쳐 목 아래 전신이 마비되는 비극을 맞았다. 3일간의 의식불명, 0.1%의 생존 확률. 대다수의 사람이라면 절망의 다락방에 자신을 가두었을 깊은 침묵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일어섰다. 사고 불과 6개월 만에 입으로 조작하는 특수 마우스와 전동 휠체어에 의지해 서울대 강단으로 복귀했다. 세상은 그를 ‘한국의 스티븐 호킹’이라 불렀고, 언론은 ‘인간승리’라는 진부하지만 가식 없는 네 글자로 그를 포장하곤 했다. 하지만 필자가 곁에서 지켜본 이상묵 교수는 단순히 비극을 극복한 스토리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는 누구보다 엄격하고 도도한 ‘학자’였다.
그와의 인연 속에서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기억은 ‘만해대상(실천부문)’ 수상과 관련한 에피소드다. 그가 사회적 약자와 이공계 장애인 엘리트 양성에 바친 헌신을 익히 알고 있던 필자는 만해상 수상을 여러 차례 권유하고 추천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는 매번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선배님, 저는 엄연한 학자입니다. 학자는 학문적 성과로 평가받고 상을 받아야지, 장애를 극복했다거나 봉사를 했다는 이유로 상을 받는 것은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학자로서의 자존심과 본질에 대한 집착. 그는 그렇게 3년 동안이나 상을 사양했다. 그러다 2022년 제26회 만해대상 시상식장에 서야 비로소 상을 받아들였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정신을 다시 새기며, 그 실천이 바로 자신의 곁에 있는 소외된 이웃이자 장애를 가진 미래 세대를 향한 길임을 받아들인 까닭이었다고 필자는 본다.
그의 학자적 양심과 인간적 책임감은 사고 직후 세상을 떠난 제자를 향한 부채의식과도 깊이 닿아 있다. 그는 승소한 차량 제조사(포드)와의 손해배상금과 자서전 <0.1그램의 희망> 인세를 모아 세상을 떠난 제자의 이름을 딴 장학금을 만들었다. 절망의 피눈물로 만들어진 그 장학금은 지금도 또 다른 젊은 지구과학자들의 꿈을 밝히는 등불이 되고 있다.
어느덧 사고가 난 지 20년이 흘렀다. 내가 이 글의 초고를 쓰던 지난 4일, 이상묵 교수는 일본 오사카 출장 중이었다. 5일 귀국한 그는 몸 상태가 몹시 좋지 않아 7일 다시 입원할 예정이라고 했다. 올해 들어 벌써 세 번째 입원이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고 있다. 2027년 7월 인천 송도에서 열리는 ‘지구과학의 올림픽’, 국제측지학 및 지구물리학 연맹(IUGG) 제29차 총회의 조직위원장으로서 성공적인 대회 개최를 위해 국내외 현장을 휠체어로 누비고 있다. 자신의 몸이 보내는 경고를 감내하면서도 세계 지구과학자들이 모일 무대를 준비하는 그의 모습에서, 학문과 책임을 대하는 한 과학자의 집념을 다시 본다.
사람들은 그를 보며 ‘인간승리’를 말한다. 그러나 필자는 그 단어가 이상묵이라는 인물의 깊이를 다 담아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20년 전 사고로 휠체어라는 작은 틀에 몸을 맡기게 되었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45억 년 지구의 역사를 관통하고 있으며, 그의 마음은 국경과 장애를 넘어 인류의 미래로 향해 있다. 이상묵 교수는 여전히 휠체어 위에서 가장 뜨겁게 지구를 연구하는 ‘거대한 학자’이자, 삶의 본질을 몸소 증명해 내는 자랑스러운 동반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