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정세 브리핑] 미중 경쟁, 남중국해·공급망·6G로 확전

미중 전략경쟁이 관세와 반도체를 넘어 남중국해 군사대치, 인공지능과 로봇, 6세대 이동통신인 6G 국제표준, 핵심광물과 공급망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중국은 군사력 과시와 기술 자립, 제한적 경기부양을 병행하고 있으며, 미국은 동맹과 인권·통상 제재를 결합해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이번 분석에서는 최근 중국의 남중국해 훈련과 대만 주변 순찰, 미국의 위구르강제노동방지법 확대, 중국의 경제·기술 전략을 종합해 동북아 정세에 미칠 영향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미중 경쟁의 전선이 넓어지고 있다. 경제·통상 분야에서는 미국이 관세와 수출통제, 위구르강제노동방지법을 앞세워 중국 공급망을 압박하고 있다. 군사·안보 분야에서는 중국이 남중국해와 대만 주변에서 훈련과 순찰을 확대하고 있다. 기술 분야에서도 반도체와 인공지능, 로봇에 이어 6G 국제표준이 새로운 경쟁 영역으로 떠올랐다. 중국은 이에 맞서 기술 자립과 군사 현대화, 글로벌 사우스 외교를 하나의 국가전략으로 연결하고 있다. 미국 역시 인권과 국가안보, 산업정책을 결합해 중국 기업과 공급망을 동시에 겨냥하고 있다. 미중 경쟁이 경제와 안보를 구분하기 어려운 장기적인 체제경쟁으로 굳어지는 모습이다.
남중국해, 회색지대 넘어 실전형 무력 투사
중국 인민해방군 남부전구는 최근 스카버러 암초 일대에서 해군과 공군이 참여하는 합동훈련을 벌였다. 공개된 영상에는 초음속 대함미사일을 탑재한 H-6K 폭격기와 071형 상륙함, 056A형 초계함 등이 등장했다.
중국이 그동안 남중국해에서 해경선과 해상민병대, 물대포 등을 앞세워 압박해왔다면, 이번에는 폭격기와 상륙 전력을 동원했다. 회색지대 전략을 넘어 실제 군사작전을 염두에 둔 무력 투사로 수위가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번 훈련은 필리핀이 스카버러 암초 주변 해저에 대한 권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직후 실시됐다. 중국은 필리핀의 영해 기선 설정 시도를 자국의 영토주권과 국제법을 침해한 행위로 규정하고 군사·외교적 대응을 동시에 예고했다.
스카버러 암초는 필리핀 루손섬에서 약 220㎞ 떨어져 있어 필리핀의 배타적경제수역 안에 있지만, 중국도 역사적 권리를 내세워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2012년 이후 이 해역을 사실상 통제해왔다. 필리핀은 2016년 국제상설중재재판소 판정을 근거로 중국의 광범위한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문제는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필리핀 선박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다. 미국은 필리핀과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다. 국지적인 충돌이 미중 군사대치로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대만 동부까지 넓어진 중국의 압박
중국의 압박은 대만해협에서도 더욱 일상화하고 있다. 중국 해경은 진먼 주변 순찰에 이어 대만 동부 해역까지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대만 동부는 유사시 미국과 일본이 대만을 지원할 수 있는 태평양 보급로와 연결되는 지역이다.
중국이 이 해역에서 순찰을 정례화하는 것은 단순한 해상 법 집행을 넘어 대만의 후방 보급로를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중국 군용기의 대만해협 중간선 침범과 함정 활동, 헬기 투입까지 겹치면서 유사시 해상봉쇄를 위한 예행연습이 일상적인 순찰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을 서로 분리된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전역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보인다. 해경과 해군, 공군을 단계적으로 투입해 평시에는 법 집행과 훈련을 강조하면서도, 필요할 경우 신속하게 군사작전으로 전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미국, 중국 공급망 압박 확대
미국은 위구르강제노동방지법에 따라 중국 기업 43곳을 수입금지 대상 명단에 추가했다. 이에 따라 제재 대상 기업은 144곳에서 187곳으로 늘었다. 2021년 법 제정 이후 한 번에 이뤄진 최대 규모의 명단 확대다.
대상 기업은 전자부품과 식품, 금속, 배터리 소재, 리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미국은 이들 기업이 신장위구르자치구의 강제노동이나 소수민족 노동력 이전 사업에 관여했거나 관련 원료를 공급받았다고 보고 있다.
이번 조치는 인권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중국산 배터리 소재와 전자부품, 핵심광물의 미국 시장 진입을 제한해 중국 중심의 공급망을 약화하려는 산업정책의 성격도 강하다.
중국은 미국의 조치를 일방적인 경제적 강압이라고 비판하며 대응조치를 예고했다. 앞으로 중국이 미국 기업의 중국시장 접근을 제한하거나 희토류와 핵심광물 수출통제를 강화할지가 주요 변수다.
미국의 관세와 위구르강제노동방지법 확대는 이미 실물경제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중국의 7월 대미 수출은 일시적인 회복세 이후 다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조업 경기 위축과 함께 수출 동력까지 약해질 경우 중국 경제의 하방 압력은 더욱 커질 수 있다.
6G 국제표준, 새 기술패권 전선
미중 기술경쟁은 반도체와 5G를 넘어 6G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 영국, 독일, 호주 등 동맹·우방국들과 6G 기술의 보안과 공급망, 국제표준 협력을 강화하는 구상을 추진하고 있다.
6G는 단순히 통신 속도를 높이는 기술이 아니다. 인공지능과 자율주행차, 로봇, 위성통신, 무인무기체계와 스마트공장을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국가 핵심 인프라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국제표준을 선점한 국가는 통신장비와 반도체,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장기간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중국도 5G 상용화 경험과 대규모 내수시장, 정부 주도의 연구개발 투자, 방대한 특허를 바탕으로 6G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국제전기통신연합을 비롯한 다자기구에서 주파수와 기술표준을 둘러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한국은 6G와 반도체, 통신장비 분야에서 상당한 기술력을 갖고 있다. 미국 주도 협력에 참여하면서도 중국 시장과 공급망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기술안보와 산업이익을 동시에 지켜야 하는 정교한 전략이 요구된다.
중국, 대규모 부양보다 선택적 완화와 기술 집중
중국 경제는 부동산 침체와 소비 부진, 지방정부 부채, 청년 고용불안 등 복합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과거와 같은 대규모 부동산·인프라 부양보다는 기존 재정자금의 집행을 앞당기고 인공지능과 로봇, 반도체, 첨단제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은 하반기 통화정책을 ‘적당히 완화적’으로 유지하되, 보다 실용적이고 점진적으로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대규모 유동성 공급보다는 첨단제조업과 소비의 특정 부문을 겨냥한 구조적·표적화된 지원이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금융당국은 증권사의 사모펀드 대상 신규 역외 스와프를 중단하도록 했다. 증시 상승기에 과도한 레버리지와 투기가 시스템 리스크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다. 경기 부양과 금융 안정이라는 두 목표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강조하는 또 하나의 과제는 ‘내권’ 해소다. 내권은 전기차와 태양광, 배터리 업계 등에서 나타나는 소모적인 가격경쟁과 과잉생산을 뜻한다. 중국은 전통 제조업의 출혈 경쟁을 줄이고 자본과 인력을 인공지능과 로봇, 반도체 등 전략산업으로 돌리려 한다.
그러나 첨단산업만으로 중국 경제 전체를 회복시키기는 어렵다. 부동산 침체와 가계소비 부진이 계속되면 첨단기업도 충분한 내수시장을 확보하기 어렵다. 인공지능과 로봇에 대한 과도한 투자가 전기차와 태양광처럼 또 다른 공급과잉을 낳을 가능성도 있다.
AI 경쟁, 성능에서 가격과 시장점유율로
중국 인공지능 모델들은 낮은 가격과 오픈소스 전략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중국 모델들이 글로벌 API 호출 상위권을 차지하면서 미중 AI 경쟁은 기술 성능을 넘어 가격과 개발자 채택률을 둘러싼 상업적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첨단 반도체 수출통제에도 소프트웨어와 오픈소스 생태계, 컴퓨팅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 기술 분야에서는 빠르게 영향력을 확대하는 반면, 대미 수출은 감소하는 비대칭적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기술 자립과 군사 현대화의 결합
중국이 인공지능과 로봇, 6G에 투자하는 목적은 경제성장에만 있지 않다. 이들 기술은 드론과 자율무기, 무인함정, 지휘통제체계와 군사위성으로 전환할 수 있는 대표적인 민군 겸용 기술이다.
중국은 민간기업과 대학, 연구기관이 개발한 기술을 군에 이전하는 군민융합 전략을 지속해왔다. 세계 최대 제조업 기반에서 축적한 데이터와 부품 공급망도 군사기술 개발을 뒷받침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값싼 드론이 전차와 포병, 방공체계를 위협하는 장면이 확인되면서 중국군도 인공지능과 무인체계를 결합한 전투방식에 주목하고 있다.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에서 무인정찰기와 무인수상정, 장거리 대함미사일을 결합하면 미군의 접근을 어렵게 하는 능력이 한층 강화될 수 있다.
한국, 기술·공급망·안보를 묶은 전략 필요
미중 경쟁의 장기화는 한국에 선택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안보 면에서는 미국·일본과의 협력이 필요하지만, 경제 면에서는 중국과의 교역과 공급망을 무시하기 어렵다.
특히 반도체와 배터리, 통신장비, 핵심광물 분야에서는 어느 한쪽에만 의존하지 않는 공급망 다변화가 중요하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사안마다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해서는 장기적인 산업 경쟁력을 지키기 어렵다.
미중 경쟁은 한 차례의 정상회담이나 무역협상으로 끝날 갈등이 아니다. 통상과 기술, 군사, 국제표준을 아우르는 장기적인 체제경쟁으로 굳어지고 있다. 동북아 정세 역시 이 경쟁의 영향을 받아 경제와 안보의 경계가 더욱 흐려질 것이다.
한국은 개별 현안에 수동적으로 대응하기보다 기술개발과 공급망, 외교안보, 국제표준 전략을 하나로 묶은 중장기 국가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의 긴장, 미중 공급망 재편, 6G와 인공지능 경쟁은 서로 다른 사건이 아니다. 모두 경제력과 기술력, 군사력을 결합해 미래 질서를 선점하려는 미중 전략경쟁의 한 장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