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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3요소 ‘걷기·구강·관계’…”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혼자 식사하는 일이 잦고,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으며, 친구와 거의 만나지 않는 사람은 우울과 인지기능 저하, 사망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반대로 자신을 걱정해줄 사람이 있고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고령자는 같은 질병이 있어도 기능 저하가 늦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사람은 질병으로만 늙는 것이 아니라 고립과 외로움으로도 늙는다.-본문에서

요즘 ‘100세 시대’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100세까지 살더라도 마지막 10년 이상을 질병이나 장애 속에서 지내야 한다면 그 시간은 본인에게도 가족에게도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은 83.8세, 건강수명은 72.5세였다. 약 11년을 온전한 건강 상태가 아닌 채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기대수명’은 한 사람이 태어나 평균적으로 생존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간이며, ‘건강수명’은 질병이나 장애로 인한 제약 없이 건강하게 생활할 것으로 기대되는 기간이다. 이제 우리의 관심은 ‘얼마나 오래 사는가’에서 ‘얼마나 건강하게 사는가’로 옮겨가야 한다.

건강수명을 늘리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규칙적인 신체활동이다. 헬스장에 갈 시간이 없다면 일상에서 짬을 내 걷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미국 성인 3101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이라도 하루 8000보 이상 걸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10년간 사망 위험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는 관찰연구이므로 걷기가 사망 위험을 직접 낮춘다고 단정하기보다, 꾸준한 신체활동과 건강 사이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는 성인에게 매주 150~300분의 중강도 유산소 신체활동 또는 75~150분의 고강도 활동을 권고한다. 여기에 주 2회 이상 근력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좋다. 중강도 활동은 빠르게 걸을 때처럼 숨은 조금 차지만 대화는 가능한 정도다.

장수 노인들의 식탁에는 특별하고 값비싼 음식보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평범한 식재료가 꾸준히 오른다. 콩류, 생선, 채소, 견과류, 발효유와 같은 식품을 균형 있게 섭취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오래 건강하게 사는 비결은 특정 음식 한 가지가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식생활에 있다.

일본의 사회역학자 곤도 가쓰노리 교수 등이 이끌어온 ‘일본 노년학적 평가 연구’(Japan Gerontological Evaluation Study·JAGES)는 건강한 노년을 결정하는 사회적 요인에 주목해왔다. 이 연구는 1999년 아이치현의 두 지방자치단체에서 시작해 전국 규모로 확대됐다. 연구진은 의학적 요인뿐 아니라 인간관계, 사회활동, 취미, 봉사활동, 구강 건강, 식사 형태, 지역 환경 등이 노년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사해왔다.

연구진은 혈압과 혈당, 흡연과 음주, 운동 습관만 살핀 것이 아니다. 친구가 있는지, 지역 모임에 참여하는지, 취미나 봉사활동을 하는지, 이웃과 교류하는지, 치아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음식을 잘 씹는지, 혼자 식사하는 일이 잦은지 등을 함께 조사했다. 이후 누가 기능 저하를 겪고, 장기요양이 필요해지며, 누가 독립적인 생활을 유지하는지를 추적했다.

여러 연구가 공통으로 보여주는 것은 사회적 관계와 참여가 건강한 노년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을 만나고, 취미와 운동 모임에 참여하고, 지역사회에서 역할을 맡는 고령자일수록 기능 저하와 노쇠 위험이 낮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었다.

건강수명은 병원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동네 경로당과 합창단, 운동 모임, 자원봉사, 친구와의 식사 자리에서도 만들어진다. 약은 병을 치료하지만 관계는 삶을 지탱한다. 친구와 이웃,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 공동체 안에서의 신뢰와 역할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사회적 자본’이다.

혼자 식사하는 일이 잦고,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으며, 친구와 거의 만나지 않는 사람은 우울과 인지기능 저하, 사망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반대로 자신을 걱정해줄 사람이 있고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고령자는 같은 질병이 있어도 기능 저하가 늦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사람은 질병으로만 늙는 것이 아니라 고립과 외로움으로도 늙는다.

JAGES를 비롯한 노년학 연구에서는 구강 건강의 중요성도 강조된다. 치아가 적고 씹기가 어렵거나, 구강건조와 삼킴 기능 저하가 있는 고령자는 영양 섭취가 줄고 신체 기능이 떨어질 위험이 있다.

치아는 단순히 음식을 씹는 도구가 아니다. 치아와 구강 기능이 유지돼야 다양한 음식을 먹고 근육과 체력을 지킬 수 있다. 발음을 또렷하게 하고, 웃으며 사람을 만나고,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데도 구강 건강이 중요하다.

구강 건강이 나빠지면 식사가 어려워지고 영양 상태도 악화될 수 있다. 외출과 대화가 줄면서 인간관계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입의 노화가 전신 기능과 사회활동의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현대 의학은 기대수명을 크게 늘렸지만 건강수명의 연장은 의학만으로 이룰 수 없다. 사회가 기반을 만들고, 지역사회가 기회를 제공하며, 개인이 일상에서 실천해야 한다.

은퇴 후에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나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것이 좋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고 느끼면 생활에 규칙이 생기고, 몸을 움직이며, 사람을 만나게 된다. 건강수명은 이런 일상의 부산물이다.

건강한 노년을 위해서는 세 가지를 특히 기억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근육이다. 걷기와 계단 오르기, 가벼운 근력운동을 통해 근육을 유지해야 한다.
둘째는 입이다. 정기적으로 치과 검진을 받고 치아와 잇몸, 씹는 힘을 관리해야 한다.
셋째는 사회적 연결이다. 친구를 만나고 모임에 참여하며 혼자 식사하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일본의 65세 이상 고령자 4425명을 4년 동안 추적한 연구에서는 치아가 적으면서 틀니를 사용하지 않은 사람이 20개 이상의 치아를 가진 사람보다 치매 발생 위험이 높았다. 정기적으로 치과 진료를 받지 않는 경우에도 치매 발생 위험이 높게 나타났다. 다만 이 결과는 구강 상태와 치매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관찰연구이며, 치과 치료만으로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사회도 더 큰 준비를 해야 한다. 고령자 복지는 병원과 요양시설을 늘리는 데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장기요양이 필요해지기 전에 기능 저하를 예방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걷기 좋은 길, 운동 모임, 취미 교실, 공동 식사, 구강 관리, 방문형 예방 서비스 등이 지역사회 안에 마련돼야 한다.

JAGES 연구가 던지는 장수의 원칙은 다음 여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집 밖으로 나가 취미와 운동, 봉사활동 등 사회활동에 참여한다.
둘째, 친구와 이웃, 공동체 안에서 관계와 역할을 유지한다.
셋째, 은퇴를 모든 사회활동의 끝으로 여기지 않는다. 시간제 일자리와 봉사활동, 가족 돌봄 등 자신에게 맞는 역할을 찾는다.
넷째, 치아와 구강 기능을 꾸준히 관리한다.
다섯째, 걷기 좋은 길과 모임 공간, 서로 인사하는 문화 등 건강한 지역 환경을 만든다.
여섯째, 삶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유지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려는 태도를 잃지 않는다.

다만 이 여섯 가지는 JAGES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단일한 ‘장수 법칙’이라기보다 여러 연구 결과를 토대로 정리한 실천 원칙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

우리나라는 이미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이제 지역사회 자체가 건강수명을 늘리는 공간으로 발전해야 한다. 고령자가 잘 걷고, 씹고, 말하고, 웃으며 누군가를 만나러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의학이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해 생명을 연장한다면, 사회는 건강한 삶의 시간을 연장한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은 건강을 병원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건강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자란다. 혼자 오래 버티는 삶보다 함께 웃고, 함께 걷고, 서로 돌보며 살아가는 삶이 더 건강한 장수의 길이다.

친구와 사회적 관계는 노년의 사치가 아니라 건강을 지키는 중요한 조건이다. 공동체는 우리 모두가 함께 가꾸어야 할 생명의 울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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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윤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서울대 보건학박사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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