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는 식물이지만, ‘고추’는 언어가 되었다”

남만초에서 고추까지… 400년, 한 단어의 문화사
며칠 전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을 찾았다. 전시장 한쪽에는 이수광의 <지봉유설>이 펼쳐져 있었고, 그 곁에는 붉은 고추를 손에 든 채 바라보는 한 청년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하나는 17세기의 기록이고, 다른 하나는 현대의 그림이었다. 그러나 두 작품은 마치 400년의 시간을 건너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그 앞에 서 있는 동안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떠올랐다. ‘남만초가 조선에 들어오기 전에도 고추라는 말이 있었을까?’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이 식물을 남만초(南蠻草)라 불렀다. ‘남쪽 오랑캐의 풀’이라는 뜻이다. 일본을 통해 들어왔다 하여 왜개자(倭芥子)라고도 적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그것은 아직 낯선 외래식물이었고, 그는 심지어 “독이 심하다”고 기록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독초라는 뜻이라기보다, 그만큼 자극이 강한 새로운 식물이라는 인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남만초나 왜개자라고 부르지 않았다. 어느새 모두가 고추라고 부르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부터다. 처음에는 식물의 이름이었던 고추는 사람들의 입을 오가며 점차 새로운 뜻을 품기 시작했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은 몸집보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이르는 말이 되었다. 남자아이의 성기를 부르는 순한 표현도 ‘고추’가 되었다. 남성다움을 빗대어 “고추 값은 해야지”라고 말하기도 했고, 비겁한 사람을 향해 “고추를 떼어버려라”라는 거친 꾸짖음도 생겨났다.
한때는 지방의 어느 공항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자, 넓은 포장 공간에서 고추를 말렸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쓸모없는 시설을 두고 “고추 말리려고?” 하는 풍자까지 생겨났다.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그런 표현이 널리 통했다는 사실 자체가 ‘고추’라는 단어가 얼마나 생활 속 깊이 스며들었는지를 말해 준다.
생각해 보면 놀라운 변화다. 처음 조선에 들어왔을 때 고추는 낯선 외래식물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고추는 단순한 채소가 아니다. 식탁에 오르고, 속담이 되고, 농담이 되고, 은유가 되고, 풍자가 되었다. 식물 하나가 이처럼 풍부한 문화적 의미를 갖게 된 경우는 흔치 않다.
그래서 나는 고추라는 식물보다, ‘고추’라는 단어가 더 흥미롭다. 식물은 밭에서 자라지만, 단어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란다. 사람들의 입을 거치고, 이야기를 거치고, 웃음과 꾸중을 거치면서 뜻을 넓혀 간다. 그렇게 단어는 하나의 문화를 품게 된다.

이수광은 <지봉유설>에 남만초를 기록하면서 한 식물의 도래를 적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날 조선에 들어온 것은 식물만이 아니었다. ‘고추’라는 말도 한국인의 언어 속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남만초는 조선에 들어와 고추가 되었고, 고추는 세월을 건너 하나의 언어가 되었다. 그리고 400여 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쓰면서도, 그 속에 켜켜이 쌓인 역사와 문화의 시간을 함께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