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그들은 아직도 ‘우리 중대장님’이라 부를까
이달 초 아흔한 살의 예비역 중장, 한 분의 언론인과 함께 2박 3일을 보냈다. 노병은 전쟁과 군대, 그리고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그중 유난히 마음에 남는 말이 있었다. 노병은 자신이 소대장 시절 함께 근무했던 병사들은 이제 거의 모두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지금도 연락이 닿는 사람은 한 명뿐이라고 했다. 중대장 시절 부하들 역시 대부분 먼저 세상을 떠났고, 이제 두 명 정도만 가끔 찾아온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노병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 친구들은 대부분 시골 출신이었어.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담배 심부름도 하고, 농사일을 거들며 술과 담배에 너무 일찍 노출됐지.” 그 말에는 먼저 떠나간 부하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 있었다.
그러다 문득 오래 전부터 궁금했던 질문을 드렸다. “장군님은 원래 FM으로 유명하지 않으셨습니까? 병사들은 ‘뒤에 있는 중대장이 더 무서워서’ 앞에 있는 적을 향해 돌진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부하들이 수십 년이 지나도록 ‘우리 중대장님’ 하며 찾아오는 겁니까?”
노병은 한동안 웃기만 하더니 대답 대신 한 사람의 이름을 꺼냈다.
오기(吳起). 중국 전국시대의 명장이다. 병사의 종기에 직접 입을 대고 고름을 빨아주었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이를 본 사람들은 감동했지만, 한 병사의 어머니는 오히려 울었다. “예전에 장군이 우리 남편의 종기도 빨아주었는데, 그 사람은 장군을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이제 내 아들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노병은 그 이야기만 하고 더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 병사들은 무서워서 움직일 수 있다. 규율 때문에도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평생이 지나도록 “우리 중대장님”이라고 부르게 만드는 것은 다른 무엇이다. 그것은 자신을 아껴주고 기억해 주었다는 경험일 것이다.
문득 대학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성기준 교수님과 백상호 교수님을 비롯한 여러 스승들에게서 많은 사랑과 은혜를 받으며 성장했다. 지금 생각해도 과분한 관심과 배려였다.
그런데 나는 어땠을까.
젊은 전공의들과 학위생들을 지도하면서 엄격함은 있었지만, 그들에게 충분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었는지는 자신이 없다. 환자를 위해, 수술을 위해, 교육을 위해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지, 그들이 기억할 만한 따뜻함을 얼마나 나누었는지는 모르겠다.
나이가 들수록 가르치는 일보다 섬기고 남기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 기술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을 아껴주었던 사람을 오래 기억한다.
손오병법의 오기가 전해주는 이야기도, 노병을 찾아오는 옛 병사들의 발걸음도 결국은 같은 말을 하고 있는 듯하다.
리더십은 앞에서 명령하는 능력이 아니라, 뒤돌아보았을 때 누군가가 아직도 “우리 중대장님”이라고 불러주는 관계인지도 모른다. 늦었지만 나 역시 이제라도 그 점을 배워야 할 것 같다.
아흔한 살 노병에게서, 오늘 또 하나의 리더십을 배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