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6일 서울 봉은사 지장전에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백상호 교수님의 49재가 봉행되었다. 나도 휴가를 내고 그 자리에 함께했다. 에어컨도 없는 작은 법당이었다. 의자 대신 방석 위에 앉아 한 시간 반 동안 독경을 들었다. 여름 더위에 다리는 저리고 등에 땀이 흘렀지만, 누구도 그 불편함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모두 같은 마음으로 스승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고 있었다.
지장전에는 지장보살과 시왕이 모셔져 있었다. 은은한 향내와 독경 소리가 법당을 가득 메웠고, 유족들은 두 손을 모으고 고인의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그런데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백 교수님의 유해는 아직 화장되지 않았다. 생전에 자신의 몸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에 기증하셨기 때문이다. 아마 내년에도 새로운 의대생들이 교수님의 몸을 통해 인체를 배우게 될 것이다. 평생 해부학을 가르치신 스승은 강의를 마친 것이 아니었다. 강단을 떠난 뒤에도 자신의 몸으로 후학을 가르치고 계셨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49일 동안 중음의 여정을 거친다고 한다. 그래서 49재를 올리며 망자의 평안과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지장전에는 시왕과 함께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다. 시왕은 업을 살피는 존재이고, 지장보살은 고통받는 중생을 끝까지 보듬는 자비의 상징이다. 정의와 자비가 함께 머무는 공간인 셈이다.
문득 티베트불교에서 전하는 업경(業鏡)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망자는 그 거울 앞에서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마주한다고 한다. 만일 그 거울이 백상호 교수님 앞에 놓였다면 무엇이 비쳤을까.
수많은 논문과 연구 업적도 있었을 것이다. 해부학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인체를 설명하시던 모습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신의 몸마저 후학을 위해 내어놓은 마지막 보시가 가장 환하게 비치지 않았을까.
불교에서 가장 큰 덕목 가운데 하나는 보시다. 자신의 것을 내어 다른 생명을 이롭게 하는 일이다. 의사에게 해부학은 모든 의학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는 언제나 이름 없는 시신 기증자들의 숭고한 결단이 있다. 그들의 마지막 선물 덕분에 학생들은 사람의 몸을 배우고, 훗날 수많은 환자의 생명을 살리게 된다. 백상호 교수님은 평생 제자들을 가르치셨고, 지금도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신다. 말이 아니라 침묵으로, 강의가 아니라 자신의 몸으로.

법회가 끝난 뒤 가족들은 영정과 종이 위패를 들고 밖으로 향했다. 제자들은 조화를 들고 그 뒤를 따랐다. 스님들의 독경 속에서 영정을 액자에서 꺼내고, 위패와 꽃을 함께 소각로에 넣었다. 소각로 문이 닫히고 사진이 불길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모두 말없이 그 자리를 지켰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깨달았다.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가족의 기도와 의학 교육을 위해 몸을 기증한 스승의 선택은 서로 다른 길이 아니었다. 하나는 떠나는 이를 위한 자비였고, 다른 하나는 살아가는 이를 위한 자비였다. 두 자비는 결국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법회를 마치고 지장전을 나서며 마음속에 한 문장이 오래 남았다. 스승은 강단을 떠나도 가르침을 멈추지 않는다. 영정은 불길 속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스승은 아직 떠나지 않았다. 서울대학교 해부학교실에서는 지금도 스승의 마지막 강의가 조용히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