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읍의 두암교회를 찾아갔다. 꽤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니 노란 금계국이 가득 핀 꽃밭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꽃밭 사이로 돌길 하나가 곧게 뻗어 있었고, 길 끝에는 철제 십자가가 서 있었다. 십자가의 밑동은 둥근 몽돌들이 감싸고 있었다.
그 뒤로 순교기념탑이, 다시 그 뒤로는 순교자들의 합장묘가 자리하고 있었다. 합장묘 둘레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돌이 원형으로 둘러져 있었다. 마치 지금도 그들이 서로를 지키고 있는 듯했다.

오른편에는 ‘순교기념관’이라 적힌 철제 건물이 있었다. 그곳으로 들어가려면 물이 찰랑거리는 작은 쇠다리를 건너야 했다. 오전에 내린 비 때문인지 다리 위에는 얕은 물이 고여 있었고, 조심조심 걸어도 신발 끝은 조금씩 젖을 수밖에 없었다. 짧은 다리였지만, 살아 있는 오늘에서 1950년 가을로 건너가는 피안교처럼 느껴졌다.
미닫이문은 벽과 같은 무늬로 되어 있어 처음에는 문이 있는 줄도 몰랐다. 한참을 살펴보다가 조심스레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실내는 뜻밖에도 따뜻했다. 넓은 공간에 주먹보다 조금 큰 테라코타 인형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하나씩 바라보니 그들의 표정은 더욱 의외였다. 슬픔도 공포도 없었다. 몇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고, 몇은 노래를 부르는 듯했다. 엄마 손을 꼭 잡은 아이도, 어깨동무를 한 소년도, 책을 읽는 학생도 모두 행복한 얼굴이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기념관은 죽음의 순간을 재현한 곳이 아니라, 그들이 잃어버린 일상을 기억하는 곳이구나. 그들은 죽어가는 모습이 아니라 살아 있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있었다.
문득 숫자가 궁금해졌다. 하나, 둘, 셋…. 스물하나였다. ’23 순교자’라고 적혀 있었는데 이상했다. 다시 천천히 세어 보았다. 그제야 포대기에 싸여 어머니 품에 안긴 아기 하나와 젖을 먹고 있는 또 다른 아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스물셋이었다.

전시를 둘러보니 교회를 세우고 이끌던 권사와 장로, 집사들이 가족과 함께 희생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들은 혼자 죽은 것이 아니었다. 남편과 아내가, 부모와 자녀가, 젖먹이 아이까지 한 가족이 함께 희생되었다. 이곳에서 기억하는 것은 몇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신앙으로 묶인 한 가정의 삶이었다.
기념관을 나와 다시 작은 쇠다리를 건넜다. 들어올 때보다 신발은 조금 더 젖어 있었지만, 마음은 훨씬 무거워져 있었다. 건물 좌우와 뒤편에는 무궁화가 줄지어 피어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순교를 기억하는 일은 죽음을 오래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 그들이 사랑했던 삶을 오래 기억하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