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칼럼

국회 보좌진 ‘데스노트’…김승원까지 낙마, 갑질 폭로가 의원 명운 가른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026년 9월 19일 사퇴 기자회견을 마치고 국회 소통관을 나서고 있다.

강선우, 이혜훈, 김병기 이어 김승원 후보자 덜미
의원들 갑질에 침묵하던 보좌관들 인식과 태도 변화
국회 보좌관 업무 규정 마련 등 제도적 개선책 필요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 낙마의 결정적 계기가 전직 보좌진의 탄원으로 드러나면서 국회의원 보좌진의 폭로가 새로운 ‘데스노트’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선우 의원과 이혜훈 전 의원의 장관 후보직 사퇴뿐 아니라 김병기 의원의 사법처리에도 보좌관들의 갑질 제보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비례대표 겸직 논란 끝에 자진사퇴한 용혜인 장관 후보자도 보좌진의 열악한 노동 현실이 논란이 됐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선 의원 보좌진 업무 규정 마련 등 갑질 근절을 위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낙마한 의원들의 보좌진이 제기하는 공통적인 문제는 갑질 논란이다. 김 후보자의 경우 전직 보좌진이 제출한 탄원서에는 성추행 의혹과 추가 음주운전 외에 보좌진 폭언·갑질 의혹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탄원서를 제출한 보좌관은 여당에서 단독으로 청문보고서를 채택한 데 반발해 청와대에 탄원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다른 후보자들도 막말과 사적 심부름을 당한 전·현직 보좌진이 언론에 제보해 낙마에 이르게 됐다. 과거에는 국회의원의 갑질이 심해도 넘어가는 사례가 많았지만, 지금은 이를 그냥 넘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외부에 알리고 공론화한다는 게 달라진 점이다.

의원들의 보좌진 갑질이 근절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사실상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별정직 인사규정 등에 따르면 보좌직원 임명과 면직은 국회사무처 권한이지만 이는 서류상의 절차에 불과하다. 보좌진 채용을 위한 별도의 공고를 하지 않는다고 돼 있어 의원의 보좌진 임명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다른 의원실로 옮기거나 아예 다른 직장을 택하려 해도 의원들의 입김이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김병기 의원의 갑질을 견디다 못한 보좌관이 다른 직장을 택하자 김 의원이 그 회사 관계자를 만나 항의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보좌진들이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 것은 더 이상 기댈 데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정치권에서 갑질 의원을 제재하거나 피해자인 보좌관들을 구제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 윤리기구가 존재하지만 보좌진보다 입김이 센 의원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공산이 커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각 정당마다 보좌진협의회가 설치돼 있지만 기능과 역할은 제한적이다. 문제가 된 의원에 대해 조치를 취할 권한이 없고, 자칫 의원들로부터 보복을 당할 가능성도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가 합동 TF를 구성했는데, 핵심 추진 과제가 호봉 인상과 초과근무수당 현실화 등 처우 개선에 그친 것도 이런 이유다.

보좌직원들의 인식과 태도도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의원의 갑질이 드러나면 해당 의원뿐 아니라 소속 정당의 이미지 실추를 우려하는 분위기가 팽배했지만 지금은 그런 의식이 희박해졌다. 특히 민주당의 경우 학생운동을 함께 하면서 형성된 이념적 공감대가 약해지고 단순한 직장이란 인식이 커지는 추세다. 서로를 직장 동료로 인식하게 되면서 갑질을 용인할 수 없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지게 됐다. 이런 현상은 약자의 사회적 고발을 뜻하는 ‘미투 운동’ 이후 두드러졌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보좌진 갑질 문제는 이제 의원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는 단계를 넘어섰다. 의원들의 잇단 낙마로 여의도에선 의원들도 조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고 하지만, 여전히 구시대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의원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의원들의 선의에만 기댈 게 아니라 갑질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한 제도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일련의 보좌진 폭로가 국회의원들의 명운을 가르는 ‘데스노트’가 된 만큼 의원들 입장에서도 갑질을 유발하고 묵인하는 구조를 고치는 데 앞장설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선 보좌관의 업무 영역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현재 ‘국회의원수당 등에 관한 법률’은 “국회의원의 입법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보좌직원을 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보좌진의 본래 임무는 법안 기획, 예산 검토, 정책 조사 등 국회의 기능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회도서관이 2024년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보좌진 역할에 의원 대외활동 보좌, 출타 시 경호·신변 보호까지 포함돼 있다. 이런 모호하고 불분명한 업무 영역이 갑질을 부추기는 가장 큰 요인이다. 의원들의 연이은 장관 후보 낙마로 타격을 입은 민주당은 보좌진 제도 개선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는 상황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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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언론인, 전 한국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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