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참전자 540명의 얼굴이 새겨진 동판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3월 초 어느 일요일 오전이었지만 오산에 위치한 ‘유엔군 초전기념관’ 안은 놀랄 만큼 조용했다. 그 사이로 아이들의 손을 잡은 몇몇 부모가 천천히 지나갔다. 아이들은 이 젊은 얼굴들이 누구인지 아직 잘 모르는 듯 보였다.
나는 한동안 그 동판 앞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나는 학생 시절, 6·25 전쟁이 일어나자 처음 우리를 도우러 온 부대가 ‘스미스 특수임무부대(Task Force Smith)’였지만 북한군을 막지 못하고 퇴각했다는 정도만 배웠다. 승전의 장소도 아닌데 기념관이 세워졌다는 사실이 오히려 궁금해 이곳을 찾았다.
입구에는 빛바랜 종이에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이름도 위치도 들어본 적이 없는 나라, 당신은 그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울 수 있습니까?” 그 아래에는 한 참전 군인의 말이 이어졌다. “이동 명령을 받았을 때 한국이 어디 있는 나라인지 물어보았습니다. 상부에서는 도착하면 알게 될 것이라고만 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했다. 일본에 주둔하던 스미스부대는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7월 1일 부산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7월 2일 아침에는 대전에 도착했다. 그리고 7월 5일, 오산 죽미령에서 북한군과 첫 교전을 벌였다. 약 6시간의 전투 끝에 540명의 병력 중 181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89명은 포로가 되었다. 그중 39명은 포로 생활 중 목숨을 잃었고 휴전 이후 고향으로 돌아간 이는 50명뿐이었다.

나는 다시 동판의 얼굴들을 바라보았다. 대부분이 아직 앳된 청년들이었다. 놀라울 만큼 젊었고, 또 잘생긴 얼굴들이었다. 그 얼굴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전쟁은 언제나 이렇게 젊은 얼굴들을 먼저 데려간다는 것을.
동판의 알파벳 순서 거의 마지막 쪽에 월포드 형제가 있었다. 형 랜섬은 정장을 입고 정모를 쓴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청년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동생 버질의 사진은 달랐다. 그는 소총을 들고 앉은 자세로 어딘가를 겨누고 있었다. 이미 전쟁 속에 들어간 병사의 모습이었다.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두 아들이 같은 부대, 같은 소대, 같은 참호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죽미령 전투에서 형이 먼저 쓰러졌다.

또 다른 짝궁도 있었다. 조셉 랑곤과 폴 라슨이었다. 두 사람 역시 같은 참호에서 적을 맞았다. 폴은 전사했고 조셉은 살아남았다. 조셉은 수십 년 뒤 <Young Boy to American Warrior>라는 자서전을 썼고, 그 책에는 18편의 시가 실려 있다. 그중 한 편이 전우 폴을 위한 시였다. “왜 하필 너여야 하니… 왜 내가 아닌가…”
참호에서 마지막 담배를 나누어 피우던 일을 떠올리며 그는 이렇게 썼다. “신이 나를 데려가는 그날까지
영원히 너를 위해 기도할 뿐…”
기념관을 나와 540개의 돌로 만들어진 기념비 앞에 섰다. 출구의 빛바랜 현판 문장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의 시계는 1950년 7월 5일 2시 30분에 멈췄지만, 그들의 희생으로 대한민국의 시계는 영원히 움직일 것입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동판을 다시 바라보았다. 알파벳의 끝에 있던 두 형제의 이름이 오래 눈에 남았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동판 속 그 젊은 얼굴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 나이 그대로일 것이다. 가족의 기억 속에서도,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그리고 어쩌면 천국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