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속 달팽이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독자 여러분도 잠시 멈춰 작은 생명의 흔적을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사진 황건>
며칠 전 올 9월 일본 나고야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한국 핸드볼 국가대표팀의 팀닥터 자격으로 선수들의 부상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진천선수촌을 방문하였다.
진천에 있다는 ‘무명용사 위령비’를 찾아보고 싶어 일찍 출발하였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대신 진천읍 교성리 도당공원의 충혼탑과 잣고개에 있는 ‘6·25 격전지탑’, 그리고 ‘6·25전쟁 반공투사 위령비’를 둘러보았다. 별도의 주차장이 없어 길가에 차를 세우고 걸어 올라갔다.

격전지탑에는 M1 소총을 들고 앞으로 돌진하는 병사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1961년에 세워진 반공투사 위령비에는 한국전쟁 초기의 전황이 기록되어 있었다. 비문에 따르면 1950년 7월 7일 수도사단장 김석원 장군도 진천까지 후퇴하였고, 부대는 흩어져 사기가 크게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천혜의 요새인 문안산을 이용하여 후퇴 중이던 국군 600여 명을 규합하고, 열악한 무기에도 불구하고 적의 남진을 저지하였다고 적혀 있었다.
비문을 읽다가 문득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달팽이는 비석 오른쪽에 붙어 천천히 기어가며 몇 글자를 가리고 있었다. 잠시 떼어낼까 생각했지만 그대로 두었다. 예전에 <유마경>을 읽다가 꽃잎이 경전의 글자를 덮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때 문득 꽃잎을 치워 가며 읽어야만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자도 꽃잎도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달팽이 역시 전쟁도, 반공도, 이념도 모른 채 그 자리에 붙어 있었을 뿐이다. 굳이 그것을 떼어내지 않아도 위령비는 여전히 위령비였고, 달팽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생명이었다.

주변에는 차량들이 빠르게 오갔고, 산림욕장으로 이어지는 오솔길만이 조용히 숲속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전쟁의 기억을 새긴 돌비석과 한가롭게 기어가는 달팽이, 그리고 초여름의 짙은 녹음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잠시 후 나는 선수촌으로 향했다. 그날 여러 선수들의 부상을 진료했지만,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내 기억에 남아 있던 것은 위령비 위에서 묵묵히 글자를 가리고 있던 작은 달팽이 한 마리였다. 세월은 비문도 가리고 기억도 덮어버린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그 앞에 잠시 멈춰 서서 다시 읽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