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엔은 오는 11월11일 창간 3돌을 맞습니다. 그동안 독자들께서 보내주신 성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시아엔은 창간 1년만에 네이버와 검색제휴를 맺게 됐습니다. 하지만 제휴 이전 기사는 검색되지 않고 있어, 그 이전에 발행된 아시아엔 콘텐츠 가운데 일부를 다시 내기로 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좋은 정보가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편집자>
이상철 선배.
지난 설 연휴 둘째 날 정오 조금 못 미친 시각, 핸드폰에 문자메시지가 떴을 때만 해도 긴가민가 했습니다.
“이상철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께서 22일 새벽 0시16분 별세하셨습니다.”
‘그럴 리가’ 하면서도 한편으로 주마등처럼 선배와의 인연이 떠오르더군요.
2003년 한국기자협회 회장이던 저는 관훈클럽 총무를 맡은 이 선배와 처음 대면을 하였지요. 물론 ‘기자 이상철’의 명성은 지면이나 혹은 귓등으로 익히 듣고 있었습니다만. 당시 이 선배와 저는 중요한 ‘합의’를 하였지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의견일치를 이뤘습니다. “관훈클럽 임원들과 기협 회장단이 한 자리에 모여 언론계 문제들을 풀어가 봅시다.”
그해 3월 하순 며칠 뒤 인사동 ‘우정’에서 20여명의 기자들이 소줏잔을 기울이며 언론계 선후배의 친교를 다졌습니다. 당시 이미 40년 안팎의 역사를 가진 두 단체 간부가 한자리에 앉은 것은 처음이었다고 했지요. 지금도 그 전통이 남아 10년째 매년 한두 차례 대한민국 언론계의 중견 단체가 모임을 갖고 있지요.
“시작이 반인데, 그 시작이 쉽지 않아. 그렇지만 누군가는 해야 한다면 우리가 합시다!”던 이 선배. 조선일보 기자이던 선배와 한겨레신문 기자인 제가 만나는 게 그렇게 녹록지만은 않던 시절이었지요.
이 선배. 이 추운 날, 무슨 길을 그리 서둘러 가십니까?
남들이 그렇게 부러워하던 고교, 대학동창 4인방 모임에서 혼자만 이렇게 빠지시다니 말이나 됩니까? “질 때는 벚꽃처럼 지고 싶다”던 봄도 그리 멀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워낙 새카만 후배인지라, 한 출입처에서 함께 취재하며 ‘민완기자 이상철’의 기자정신과 노하우를 배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선배를 잘 아는 분들은 한결같이 “이상철은 자긍심과 명예심으로 한길을 간 기자”라고 하더군요.
1975년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 당시 종로경찰서 간사였던 이 선배가 기자실 입구에 ‘동아일보 제작에 참여하는 기자 출입금지’라고 써붙여 천안 주재기자로 ‘유배성 발령’을 받았다지요. 그런 선배가 서울시 정무부시장 시절, 훗날 무죄판결이 난 사건으로 2년 가까이 맘고생을 하였을 걸 생각하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선배 말씀대로 “진심은 통하는 법”이라지만 엎질러진 물은 어쩔 도리가 없음을, 그리하여 진실의 힘이 얼마나 무섭고 무거운 지 느껴지는 듯합니다. 기자의 책임과 책무는 또 얼마나 천근만근 무게인지요?
이상철 선배!
이곳을 떠나기 전, 50년 知友와 밟고 온 진주며, 남원이며, 정동진이며, 선자령이며 다시 보고 싶을 땐 언제고 오십시오. 이번엔 제가 동행하며 울릉도며 보길도며 백령도로 한번 떠나보시지요?
이 선배.
죽마지우와의 우정을 ‘表李不同’으로 표현하며 정을 담뿍 나누는 그 자상한 마음, 쇳소리 약간 담긴 우렁찬 목소리, 형형한 눈빛이 그립습니다.
이 선배, 그곳에서도 정론직필 아시죠?
고이 잠드소서.
2012년 정월 후배 이상기 올림
*이상철은 1949년 8월7일 부산에?출생해 부산고,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신문을 거쳐 조선일보 편집국장과 월간조선 사장 및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역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