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나의 세이렌, 워터하우스 그림 속에서 만난 내 안의 목소리

멜버른 국립빅토리아미술관의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작품 <사진 황건>

어제 멜버른의 국립빅토리아미술관(NGV)에 갔다. 여러 작품 사이를 걷다가 한 그림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의 1891년에 그려진 작품이다. 사람들은 잠시 그림을 바라보다가 지나갔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지나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한참 동안 그림을 바라보았다.

배에는 선원들이 타고 있었다. 내가 세어보니 기둥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사람까지 합쳐 열네 명쯤 되었다. 세이렌은 일곱이었다. 오디세우스는 돛대에 묶여 있었다. 그런데 그림 전체를 보고 있으면 정작 오디세우스는 생각보다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오히려 이름 없는 선원들이 배를 움직이고 있고, 세이렌들이 그들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나는 선원들의 귀를 유심히 보았다. 호메로스에 따르면 선원들은 세이렌의 노래를 듣지 않기 위해 귀를 밀랍으로 막았다. 그런데 그림 속 선원들의 머리와 귀 주변에는 무엇인가를 단단히 감은 듯한 모습이 보였다. 의사라서 그런지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Barton bandage처럼 단단히 묶었군.’ 그들은 귀를 막은 채 노를 저었다.

사진 황건

그런데 그림 아래쪽의 한 선원이 눈에 들어왔다. 붉은 머플러 같은 것을 두른 선원이었다. 그는 세이렌과 거의 맞닿을 만큼 가까이 있었고, 둘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부분에서 오래 머물렀다. 세이렌은 새의 몸을 하고 있었다. 독수리를 닮은 몸이었다. 그러나 그 위에 놓인 얼굴은 이상할 만큼 희고 아름다웠다. 빛을 받은 얼굴이 어둠 속에서 환하게 떠올랐다. 괴물의 얼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아름다웠다. 문득 ‘Femme fatale’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녀들은 사람을 불러 세우는 여인들처럼 손짓하지도,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그저 가까이 다가와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붉은 머플러의 선원과 마주한 세이렌은 너무도 다정해 보였다. 그림 전체를 보면 둘은 적이다. 그러나 그 작은 부분만 떼어놓고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가 아주 가까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처럼 보였다. 선원은 귀를 막고 있었다. 하지만 눈은 막지 않았다.

나는 또 엉뚱한 상상을 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뭐라고요? 잘 안 들려요. 조금 크게 말씀해 주세요.” 하지만 그는 노를 저어야 한다. 세이렌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을 수 없어도 입술은 볼 수 있다. 어쩌면 그는 세이렌의 입 모양을 읽으려 했을지도 모른다. 사랑에 빠지는 데 꼭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젊은 남녀라면 한 번의 눈맞춤만으로 충분할 때가 있다. 말보다 먼저 눈빛에서 무언가가 튀어 오르는 순간이 있다. Spark. 그렇다면 저 선원과 세이렌 사이에도 그런 순간이 있었을까.

다시 그림을 바라보니 이야기가 또 달라졌다. 혹시 저 세이렌은 원래 인간이었던 것은 아닐까. 어떤 저주를 받아 새의 몸을 갖게 되었고, 오랫동안 자신을 구해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그녀를 보자마자 괴물이라고 생각한다. 귀를 막고 달아난다. 그러나 저 붉은 머플러의 선원만은 달랐다. 그는 귀를 막았지만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그를 바라보았다. 혹시 그녀는 사람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구해 달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것은 호메로스의 이야기도 아니고 워터하우스의 이야기도 아니었다.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였다. 그 순간 문득 융의 ‘아니마(anima)’라는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저 세이렌은 내가 밖에서 만난 여인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내 안에 살아온 어떤 존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아니마는 단순히 남성 안에 있는 여성성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의식하지 못했던 감정과 기억, 상상과 가능성이 하나의 이미지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세이렌은 나를 유혹하러 온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오래 잊고 있던 무엇인가를 다시 바라보게 하려고 찾아온 존재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래전부터 세이렌을 생각해 왔다. 호메로스의 세이렌은 노래했다. 오디세우스는 그 노래를 듣고 싶어 자신을 돛대에 묶었다. 카프카의 세이렌은 침묵했다. 그리고 나는 계속 물었다. 세이렌은 무엇을 알고 있었을까. 그런데 어제 워터하우스의 그림 앞에서 조금 다른 것을 발견했다. 세이렌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얼굴은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림 속 선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림 앞에서 잠시 멈췄다가 지나갔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마 그때 내 안의 세이렌이 내게 말을 걸고 있었던 것 같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번에는 귀를 막지 않았다. 그저 바라보았다. 어쩌면 나는 세이렌의 노래를 들은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던 목소리를 만난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나의 세이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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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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