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달령에 올랐다. 눈앞에 펼쳐진 만리장성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가파르고 단단했다. 내가 걷고 있는 것은 진시황 때 몽염이 쌓았다는 장성이 아니다. 지금의 팔달령 장성은 명나라 때 축조된 것으로, 약 600년의 시간을 견뎌온 성벽이다.
그러나 산등성이를 따라 이어지는 성벽을 걷다 보니 이천여 년 전의 몽염이 떠올랐다. 몽염은 진시황의 명을 받아 북방에 장성을 쌓았다. <사기>의 ‘몽염열전’에는 그의 마지막 이야기가 나온다. 죽음을 앞둔 몽염은 자신이 장성을 쌓으면서 땅의 지맥을 끊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그 대목에서 내 기억은 몽염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태사공 사마천은 그의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슨 지맥이란 말인가.
사마천이 보았던 것은 땅의 맥이 아니었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군주에게 제대로 간언하지 않고, 백성을 장성 축조의 노역으로 몰아넣었던 한 사람의 책임이었다.
이것이 내가 <사기>에서 오래 기억해온 사마천의 눈이다. 당시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르는 설명에 머물지 않고, 그 너머에 있는 인간과 권력의 관계를 바라보는 눈. 성벽의 규모에 감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성벽을 누가, 왜, 어떤 대가를 치르며 쌓았는지 묻는 눈이다.

몽염의 이야기는 오래전 다른 한 사람의 목소리와도 겹쳐진다. 내가 몽염에 관한 글을 무산 조오현 스님께 보내드린 적이 있다. 스님은 그 글을 읽으시고 동안거 해제 때 대중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내 상좌 황건 교수가 쓴 글에 이런 글이 있다. 만리장성을 쌓은 장군이 모함을 받아 죽을 때 하늘을 보고 우러러 탄식을 한다. 내가 왜 죽어야 하나? 내가 지맥을 끊어 산신령이 노했구나! 꼭 내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스님은 2018년 입적하셨다. 돌이켜보면 스님도 평생 무엇인가를 쌓으셨다. 설악산 신흥사를 일으키고, 설악산문을 이루고, 만해마을과 만해상을 만들었다. 만해의 정신과 문학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많은 것을 쌓으셨다.
몽염의 장성과 스님의 일생을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나는 황제의 명에 따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과 문화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쌓은 것을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다.
팔달령의 성벽을 걸으며 문득 생각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무엇인가를 쌓는다. 성벽일 수도 있고, 절일 수도 있고, 마을일 수도 있다. 이름을 남기는 일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정신을 이어주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남는 것은 쌓아 올린 것만이 아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한 사람의 눈도 남는다. 몽염이 죽음을 앞두고 지맥을 말했을 때, 태사공은 그 지맥 너머의 책임을 물었다.
나는 그 오래된 질문을 팔달령에서 다시 만났다. 무엇을 쌓았는가. 무엇을 위하여 쌓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