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위나라 오기(吳起)…”제 자리를 아는 지혜, 물러설 줄 아는 용기”

명대(明代) 작자 미상의 오기(吳起) 초상. 실제 생전 모습은 전해지지 않으며, 후대 화가가 『사기』와 『오자』 등의 기록을 바탕으로 그린 상상화다.

대학교 1학년 때 들었던 세계문화사 수업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담당 교수는 중국 고대사 전공이었고, 한 학기 내내 사마천의 『사기』를 읽었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 읽은 책이라 이후에도 자주 펼쳐 보았다. 어느새 책은 낡고 줄은 여러 겹으로 그어졌지만, 그 안의 인물들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그 책에는 반면교사가 될 한심한 인물들도 있고, 내가 닮고 싶은 매력적인 인물들도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오기(吳起)이다. 오기를 말하면 병사와 고락을 함께한 장수나 냉혹한 개혁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내 기억 속 오기는 조금 다르다. 그가 나의 기억에 남는 이유는 말을 해야 할 때는 군주 앞에서도 서슴지 않았던 직언에 있다.

위문후(魏文侯)가 서하를 바라보며, “참으로 아름다운 산하로구나. 이것이 위나라의 보배다”라고 하자, 오기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라의 보배는 덕(德)에 있는 것이지, 험준한 산천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在德不在險 재덕부재험) 그는 곧바로 험준한 지형을 믿고 덕을 베풀지 않다가 망한 예로 “동정호의 험한 지세를 믿었던 삼묘, 황하와 제수를 믿었던 하(夏)나라 걸왕, 맹문과 태행의 요새를 가졌던, 은(殷)의 주왕”을 들었다. “덕이 없으면 배도 그를 싣지만 또한 뒤집습니다”라는 뜻을 군주 앞에서 서슴없이 펼쳤다. 그는 군주가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나라에 필요한 말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기를 더욱 존경하게 만든 장면은 따로 있다. 오기가 서하(西河)를 지키는 장수가 되어 진(秦)을 막아내고 큰 공을 세우자, 천하에 명성이 자자해졌다. 그러자 위나라에서 재상을 임명할 때 오기는 자신이 될 것이라 기대했지만, 왕은 전문(田文)을 재상으로 삼았다. 그 인사에 불만이 있었던 그는 전문을 찾아가 차례로 물었다. 군대를 거느려 적국을 제압하는 능력, 병사들의 신망을 얻는 능력, 국경을 안정시키는 능력, 이런 점에서는 자신이 전문보다 낫지 않느냐고 묻는다. 전문은 모두 인정한다. 그러나 전문은 마지막으로 되묻는다.

“지금 군주는 아직 젊고, 나라 안팎이 완전히 안정되지 않았으며, 대신들이 서로 마음을 모으지 못하고 백성들도 충분히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때에 나라를 맡겨 다스리는 일은 자네가 하겠는가, 내가 하겠는가?” 오기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 점에서는 제가 그대만 못합니다(弗如子)”고 인정하였다.

두 장면만으로도 오기의 인물상이 선명하게 보인다. 하나는 진실을 말하는 용기, 다른 하나는 한계를 인정하는 용기이다.

나는 요즘 오기를 자주 떠올린다. 전쟁을 잘하는 장수여서가 아니다. 병사와 고락을 함께하고, 군주 앞에서는 바른말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더 적임자가 있음을 알면 한 걸음 물러설 줄 알았던 그 품격 때문이다. 무용은 훈련으로 기를 수 있지만, 이러한 품격은 인격에서 나온다. 어쩌면 오늘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영웅이 아니라, 오자(吳子) 같은 군인다운 군인인지도 모른다.

오기는 전장에서 오래 살지 못했다. 그러나 사마천은 그를 역사 속에 오래 살게 했다. 사람은 죽지만 품격은 글이 되어 남는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오기를 읽으며 장수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군인의 도를 배운다. 사마천이 오기의 등불을 우리에게 전해 주었듯, 우리 또한 그 빛을 다음 사람에게 건네줄 뿐이다.

『사기』 등 고전 기록을 바탕으로 후대에 제작된 오기(吳起) 삽화. 실제 초상은 전해지지 않으며, 오늘날 알려진 오기의 모습은 대부분 역사 기록을 토대로 재현한 상상화이다. <이미지 AI 생성>

자리를 아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낮추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가장 빛날 자리와, 다른 사람이 더 빛날 자리를 함께 아는 사람이다. 오기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우리에게 군인의 도를 비추는 거울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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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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