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
동아시아
65년만에 돌아온 ‘주인 없는’ 훈장···“부모님 영전에 이제서야 올립니다”
[아시아엔=박해원 정훈장교 역임, 예비역 육군중령] 올해는 6·25전쟁이 발발한 지 69주년이 되는 해다. 6·25전쟁은 북한의 김일성이 대한민국을 공산화하기 위해 소련의 지원을 받아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기습 남침해 시작된 전쟁이다. 3년 1개월간의 긴 전쟁으로 전 국토는 초토화됐고 수많은 인명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졌다. 필자의 집안 역시 전쟁이 남기고 간 상흔을 피해갈…
더 읽기 » -
사회
부여군, 6.25전쟁 69주년 기념식 거행
[아시아엔=이주형 기자] 부여군(박정현 부여군수)은 지난 25일 부여군유스호스텔 실내경기장에서 참전용사, 국가유공자, 군민, 학생, 군인 등 3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6.25전쟁 69주년 기념식을 거행하였다. 이날 기념식은 유공자 표창, 대회사, 기념사, 격려사, 호국영웅가 노래 제창 및 만세삼창 등의 순으로 진행하여 6.25전쟁의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고 참전용사의 위훈을 널리 알렸다. 박정현 부여군수는 이날 기념사에서 “자랑스런 대한민국…
더 읽기 » -
사회
태안군, 6·25전쟁 제69주년 기념행사 개최
[아시아엔=이주형 기자] 태안군이 6·25 전쟁 69주년을 맞아 지난 25일 군청 대강당에서 가세로 군수를 비롯, 각급 사회단체 회원, 유공자 가족 등 3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6.25전쟁제69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이번 기념행사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6·25전쟁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고 전쟁의 역사적 교훈을 되새겨 호국 안보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것으로 태안군이 주관하고 6·25참전유공자회(회장…
더 읽기 » -
동아시아
[한-태 수교 60년②] “아버지에게 한국전 참전은 영원한 자랑거리였죠”
참전용사회관에 있는 참전용사 기념비. 2018년은 한국과 태국이 수교를 맺은 지 60주년 되는 해다. 태국은 6·25전쟁 중 군대를 파견해 대한민국을 지켜준 나라다. 1970년 12월 태국은 직전 1966년 대회에 이어 아시안게임을 다시 개최했다. 애초 한국에서 치르기로 결정됐으나 한국의 경제력이 이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래된 우방, 태국 군대의 어제와 오늘을 <공군>지가 찾아갔다.…
더 읽기 » -
동아시아
[발행인 칼럼] 이메일 주소를 winwin0625로 만든 이유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내 이메일 주소는 16년 전인 오늘 그러니까 2002년 6월 25일 늦은 오후 만들었다. 1997년 말 IMF 구제금융사태, 이듬해 2월 25일 ‘단군 이래 첫 정권교체’라는 김대중 정부 출범, 그리고 새천년을 앞두고 우리사회엔 相生이란 말이 자주 회자됐다. 영어로는 winwin쯤으로 번역될 그 말에 나 역시 상당히 이끌렸다. 2002년 6월 25일, 지금의…
더 읽기 » -
동아시아
[6·25전쟁 68주년①] ‘오성장군’ 김홍일 장군 “죽어도 명예를 지키라”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김홍일은 중국군 출신이었다. 1945년 8월 해방 직후 일본군 학병 출신들 위주로 국군준비대 등을 만들었으나, 이응준·김석원·유승열 등 일본군 대좌 출신들은 자중하고 있었다. 일본군 출신은 자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들은 마땅히 광복군이 국군 건설의 중핵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이 기대를 걸었던 분 중에서도 김홍일은 명분과 실력…
더 읽기 » -
[6·25전쟁 68주년③] 신성모 국방-채병덕 총장 ‘최악의 콤비’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한강교 조기 폭파는 채병덕 참모총장의 책임이지만, 여기에는 신성모 국방부 장관의 독촉이 심했다. 장관의 명령은 정무적 명령이고 이를 집행하는데는 군인으로서 채병덕의 판단이 필요했다. 장관이 시킨다고 이를 현장 책임자에게 그대로 전달만 해서야 어찌 참모총장이라고 할 것인가? 신성모는 낙루장관(落淚長官)으로 불린다. 이승만 대통령이 말할 때마다 울어서다. 존경의 염이 과도해선지, 감정을…
더 읽기 » -
[전쟁 장군들②김홍일] 이승만 ‘오성장군’ 휘호···윤봉길 이봉창 의거 폭탄 준비한 중국군 소장 출신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김홍일은 중국군 출신이었다. 1945년 8월 해방 직후 일본군 학병 출신들이 위주로 국군준비대 등을 만들었으나, 이응준, 김석원, 유승열 등 일본군 대좌 출신들은 자중하고 있었다. 일본군 출신은 자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들은 당연히 광복군이 국군 건설의 중핵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이 기대를 걸었던 분 중에서도 김홍일은…
더 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