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만에 돌아온 ‘주인 없는’ 훈장···“부모님 영전에 이제서야 올립니다”

고 박달원 일병의 화랑무공훈장을 막내동생 박해원 예비역 육군중령(오른쪽)이 17사단장으로부터 대리로 받고 있다. 

[아시아엔=박해원 정훈장교 역임, 예비역 육군중령] 올해는 6·25전쟁이 발발한 지 69주년이 되는 해다.

6·25전쟁은 북한의 김일성이 대한민국을 공산화하기 위해 소련의 지원을 받아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기습 남침해 시작된 전쟁이다. 3년 1개월간의 긴 전쟁으로 전 국토는 초토화됐고 수많은 인명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졌다.

필자의 집안 역시 전쟁이 남기고 간 상흔을 피해갈 수 없었다. 5남4녀 중 둘째 형님(박달원 일병)은 1951년 6월 1일 입대해 육군1사단 11연대 5중대에 배속돼 적과 싸우다 6월 23일 전사했다.

전투지역은 경기도 장단군 장단면 하석주리로 현재 행정구역상 황해북도 장풍군 사시리의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38도선 이북지역이다.

적과 치열한 격전 중 전사한 둘째 형님의 시신은 전투지역에 임시로 매장하고 증거품으로 명찰 하나만 수거했을 뿐이다. 약관의 나이에 국가의 부름을 받고 적과 싸우다 입대한 지 한 달도 안 돼 싸늘한 시신으로 북한 지역에 묻혀 있다.

장성한 아들을 전쟁으로 잃은 필자의 부친은 가끔 둘째 형님에 대해 말씀하셨고, 전사자 연금을 타는 날이면 늘 거나하게 술을 드시고 집으로 오셨다. 그날은 집안 분위기가 우울한 날이었다.

그래도 부모님은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전사한 아들이 언젠가 살아 돌아온다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다가 어머니는 1959년에, 아버지는 1985년에 영면하셨다.

무심한 세월 속에 잊혀 가는 둘째 형님과 관련된 소식이 얼마 전 뜻밖의 편지로 가족들을 놀라게 했다. 육군본부 보훈정책과 ‘6·25 무공훈장 찾아주기’ 전담팀에서 발송된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6·25전쟁 당시 조국수호를 위해 헌신하셨던 분 중 혁혁한 전투 공적이 있는 분들에게 무공훈장이 수여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쟁 상황으로 인해 무공훈장 명령은 발령되었지만, 증서와 메달이 전달되지 못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육군본부에서는 최근 무공훈장 찾아주기 탐문활동을 통해 대상자(성명: 박달원, 군번: 0732198)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상기 대상자와 관계가 있으시면 육군본부 담당자에게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1954년도에 수여된 화랑무공훈장이 65년 만에 군부대를 통해 우리 가문으로 전수됐다. 당사자는 물론 아들의 생환을 애타게 기다리던 부모님도 아닌 6·25둥이 막냇동생인 필자가 주인 없는 훈장을 받았다.

조국의 부름에 부응해 신명을 다 바친 공로가 인정됐음을 뒤늦게 알 수 있어 다행으로 생각하나 가슴이 미어지는 애달픔과 허전함은 지울 수가 없다. 그러나 참혹했던 전쟁터에서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산화하신 호국영령들을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고 지켜준다는 의미에서 육군본부 무공훈장 찾아주기 사업에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아울러 이 사업이 지속돼 아직도 주인을 못 찾은 수많은 훈장이 유가족의 품에 돌아가기를 소망해 본다.

이 훈장을 나라를 지키다가 장렬히 전사하고 홀로 외롭게 북한지역에 묻혀 있는 둘째 형님과 생전에 아들이 살아 돌아오리라는 믿음으로 사셨던 부모님 영전에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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