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음식 세계화, “젓가락이 포크 밀어낸다”
[Asian foods on the rise]?‘에스닉 푸드’ 넘어 일상음식 자리잡아
아시아 음식이 전 세계에서 각광받고 있다. 과거에도 일본, 중국, 인도, 태국 등의 음식은 에스닉 푸드(ethnic food)로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이제 별미로 찾는 에스닉 푸드를 넘어 세계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대중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아시아 음식 선호도는 미국의 젓가락 사용량만 봐도 알 수 있다. 전 세계 젓가락 공급량의 96%를 생산하고 있는 중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젓가락 수는 해마다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중국정부 통계에 따르면 미국 수출 나무젓가락 수는 2010년 21억 개에서 2011년 24억 개로 14% 늘어났다. 그만큼 미국인의 식탁에서 포크 대신 젓가락이 많이 쓰이고 있다는 뜻이다.
리서치 전문업체 테크노믹의 조사 결과 2010년 한 해 동안 미국 내 아시아계 식당 수는 9.3% 늘어났다. 특히 일식당은 2005년 9128개에서 2010년 1만4129개로 5001개 늘었다. 5년 새 54% 급성장이다.
글로벌 기업화 브랜드 전략이 한몫
이런 흐름에 발맞춰 아시아 음식이 인지도 높은 브랜드로 도약하고 있다. 아시아 식품업체가 글로벌 기업화하면서 세계시장을 누비는 것이다. 한국에 진출한 각국 브랜드만 봐도 그 단면을 읽을 수 있다. 공차(貢茶), 모스버거, 딘타이펑, 청키면가, 하카타 이퓨도, 로티보이, 비첸향 등이 그것이다. 식품 종류와 업태도 전통음식부터 디저트까지 다양하다.
공차는 중국 왕실에서 즐기던 최상급 잎차를 신선하게 우려내 만든 밀크티 브랜드. 2006년 타이완 카오슝에서 창업해 현재 세계인이 애호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한국에서는 2012년 4월 서울 홍대입구역 근처에 1호점을 시작으로 올해 말 100호점을 돌파하고 내년부터 지방 출점을 확대해 매장 수를 200~300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공차는 소비자 맞춤식 제조와 쫀득한 식감의 타피오카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일본의 글로벌 체인 모스버거는 푸짐한 야채와 데리야끼 소스를 이용한 일본식 햄버거로 인기가 높다. 1991년 타이완에 첫 해외진출 뒤 2006년부터 영역을 넓혀 홍콩,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호주 등에 400여 개 점포를 운영 중이다. 한국에는 지난해 2월 미디어윌과 합작투자로 진출해 현재 5개 매장을 오픈했다.
딘타이펑은 타이완 최고 딤섬 레스토랑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뉴욕타임즈>가 세계 10대 레스토랑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전 세계에 25개 분점이 있고 한국에는 2004년 미디어월과 합작 투자로 명동, 강남 등 6개 매장을 냈다. 딘타이펑의 대표메뉴는 만두 속에 육즙이 가득한 샤오롱바오다. 샤오롱바오 외 만두소가 다양한 여러 종류 만두를 맛 볼 수 있다.
광둥과 홍콩 대중음식인 완탕면 전문점 청키면가는 60여 년 동안 4대에 걸쳐 전통의 맛을 지키며 세계인의 입맛을 길들였다. 2012년 미슐랭가이드에 대표적인 면 전문점으로 소개됐다. 한국에는 대치동과 이태원에 매장이 있다.
일본 라멘 프랜차이즈 브랜드 하카타 이퓨도는 1985년 후쿠오카 덴진 니시도리에서 시작했다. 동네 주민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해 요코하마, 도쿄, 오사카 등 전국 체인으로 성장했다. 2008년 뉴욕에 진출한 이퓨도는 이듬해 <미슐랭가이드>와 <뉴욕타임즈>에서 호평을 받았다. 2011년 AK플라자와 협약을 맺고 한국에 진출해 3개 점포를 운영 중이며 싱가포르, 홍콩, 대만, 중국 등에 매장을 두고 있다.
말레이시아 베이커리 전문 브랜드 로티보이는 2007년 국내에 ‘커피번’ 열풍을 일으켰다. 1998년 말레이시아에서 창업한 이래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등 12개 국가에 진출했다. 한국 지점은 이른바 짝퉁 브랜드 등장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으나 얼마전 히로탄 로티보이 대표가 한국을 방문해 재도약을 다짐하고 있다.
공차, 딘타이펑, 비첸향 등 세계적 명성
비첸향은 싱가포르에 본점을 둔 육포 브랜드로 맛좋기로 정평이 나 있다. 비첸향을 만드는 CHC푸드는 1933년 싱가포르에서 비첸향을 처음 생산해 현재 중국, 홍콩, 대만 등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8개국에 160여 개 매장을 두고 있다. 돼지고기 뒷다리살, 닭고기, 쇠고기 등을 얇게 썰어 참나무숯에 훈제한 바비큐 육포. 한국에서는 샘표가 ‘질러’ 브랜드로 비첸향 육포를 판매한다.
싱가포르의 유명 맛집 ‘위남키’ 역시 세계인을 홀린 브랜드다. 싱가포르, 필리핀, 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치킨 라이스’가 주력 메뉴인 이곳은 싱가포르의 상징으로 통할 정도로 명소가 됐다. 위남키는 하이난식 치킨 라이스로 싱가포르 이민 초기 시절 가난했던 중국 이민자들이 만든 단백질 보충식이었다고 한다. 아직 한국에는 진출하지 않았지만 몇몇 기업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식품기업의 해외 진출도 활발하다. 해외시장 진출은 1990년대 초부터 본격화 됐다. 외환위기로 인한 국내 경기침체와 다국적 외국기업들의 국내 진출 등으로 인한 과도한 경쟁구도가 한국 외식업체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
‘대장금’이 열어젖힌 한식 시장
1994년 롯데리아가 기업형 프랜차이즈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중국시장에 진출했고 이듬해 이원의 투다리가 중국에 진출해 현재 130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2002년 이후 놀부, BHC치킨, 한스비빔밥, 인토외식산업, 파리바게뜨 등의 기업이 중국, 미국, 유럽, 동남아 시장을 개척했다.
특히 2003년부터 아시아를 중심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한류 바람이 한국식품의 해외진출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했다. 드라마 <대장금>이 해외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아시아를 필두로 해외로 진출하는 외식기업들이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그 예로 하이난식 치킨 라이스를 즐겨먹는 싱가포르에서 요즘 한국식 프라이드치킨 인기가 높다. 싱가포르 일간지 <스트레이트타임스>는 최근 인터넷판에 ‘싱가포르 사람들이 한국식 치킨에 푹 빠졌다’는 제목의 한국식 프라이드치킨 특집기사를 내기도 했다. CJ푸드빌은 가수 싸이를 모델로 내세워 미국에 비빔밥 브랜드 ‘비비고’를 진출시켰다. 미국 LA의 ‘강호동의 백정’은 류현진과 유리베, 푸이그 등이 다녀가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에 진출했던 서양 글로벌 외식브랜드들의 몸값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T.G.I. 프라이데이, 토니로마스,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 크리스피 크림 도너츠 등 세계적 외식업체가 최근 매물로 거론되고 있다. 플래닛헐리우드, 씨즐러, 판다로사, LA팜스, 스카이락 등의 브랜드는 아예 국내 사업을 접었다.
아시아 음식 브랜드가 두각을 나타내는 요인은 뭘까.??아시아연구소 페스트라시 소장은 “아시아의 부상과 맥을 같이 한다”며 정치사회적 배경에 주목했다. 그는 “아시아 음식은 중국, 일본, 인도, 태국 요리를 중심으로 과거부터 인기가 있었지만 최근 음식 브랜드가 뜨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라면서 “아시아가 국제사회 중심지로 떠오르면서 음식 브랜드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이 주도해온 세계질서 개편, 유럽의 쇠퇴가 음식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아시아 부상’이 음식에도 영향
육주희 <월간 식당>편집국장은 “최근 미국에서 태국 음식이 붐을 일으키고 있고 과거 일부층만 먹던 스시도 상당히 대중화 됐다”며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 새로운 음식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고 말했다. 한국에 일본, 동남아 푸드 브랜드가 밀려드는 현상에 대해서는 “해외여행이 크게 늘면서 현지에서 맛봤던 음식이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됐고 젊은층의 창업 욕구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분석했다.
아시아 각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며 브랜드 힘과 마케팅력이 높아진 것도 아시아푸드 브랜드의 선전과 관련이 깊다. 경기대 서경미 호텔조리학과 강사는 “SNS의 발달로 전세계 소비자를 상대로 한 마케팅이 가능해졌고 고급화 전략을 통한 아시아 브랜드 이미지 제고가 이뤄지며 여러 나라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건강식에 대한 관심이 아시아 음식 브랜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스위스에 거주하며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인 김진경 전 <중앙일보>기자는 유럽에 아시아 붐이 일고 있으며 그 중심에 음식이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취리히 일식당 중에선 ‘살라 오브 도쿄(Sala of Tokyo)’와 ‘후지야 오브 재팬’이 잘 알려져 있고 취리히에만 네 군데의 지점을 낸 중식당 ‘수안롱’은 ‘싸구려 볶음밥’으로만 알려져 있던 중국 음식에 대한 편견을 뒤집는 데 역할을 톡톡히 했다”며 “베이징덕과 딤섬 등 전통 중국요리는 물론, 바나나튀김 등의 특이한 디저트 때문에 이곳을 즐겨 찾는 현지인이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