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영혼 담긴 음식 ‘국수’

태국의 명물 수상시장에서는 선상노점에서 쌀국수를 판다. 뜨거운 육수에 고기, 숙주, 어묵, 파 등 고명과 소스를 뿌린 국수를 담아 내놓는다.

[Asian foods on the rise]?동서문명 합작…건식 재료와 습식 조리법의 절묘한 만남

한국인이 밥 없이 끼니 때우기 어렵다 하면서도 밥만큼 많이 먹는 것이 국수 아닌가. 하루 한 끼쯤은 국수를 먹어도 된다고 생각하거나 생일, 결혼 같은 특별한 날엔 꼭 국수를 챙긴다. 한국인뿐 아니라 아시아인, 더 나아가 세계가 즐겨먹는 이 국수는 어디서 시작됐을까. 마침 <네이처>에서 ‘인류 최초의 국수 유물’이 중국 칭하이성 황허 유역의 라자 유적지에서 발굴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4000년 전 발견된 면은 꼬불꼬불 마치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KBS ‘누들로드’ 제작팀의 ‘국수길’ 여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욱정 PD가 가장 먼저 찾아간 라자 유적지의 국수는 고고학자들에게 발견되자마자 흔적만 남기고 사라져버렸다고 했다. 첫번째 촬영은 실패하고 다음으로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화염산에서 발굴된 2500년 전 인류 최초 국수 유물을 촬영할 수 있었다. 수확한 밀을 갈돌로 빻아 밀가루를 만들고 반죽을 조금씩 떼어내 손바닥으로 비벼서 만든 면발. 그 고대국수는 오늘날 신장의 국수인 ‘라그만’과 닮아 있었다.

취재를 통해 중원의 한족이 신장으로 진출하면서 중앙아시아 식문화에 영향을 미쳤고, 중앙아시아의 밀가루 음식문화가 한나라와 당나라를 거쳐 중원으로 전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 국수를 전한 이들이 누구였든지 지금의 국수 형태를 만든 사람들은 중국 한족이다.

산시성 ‘고양이귀 국수’ 등 수백 종 현존

중국 시안 회족거리에서 수많은 밀가루 음식들을 발견했다. 한국에서 즐겨 먹는 호떡도 여기서 나왔다. 호(胡)자가 붙는 중국 고대음식들은 모두 ‘오랑캐’ 즉 소수 이민족과 관련된 것이다.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 상인들은 만들기 쉽고 장기보존이 가능하며 휴대하기 편한 음식을 들여온 것이다.

본격적으로 밀 재배가 시작되기 전 중국은 곡식의 낟알을 끓이거나 쪄 먹었다. 그래서 탕과 찜이라는 독특한 식문화가 발전했다. 대표적인 음식이 ‘만두’다. 여기서 국수의 단서가 발견된다. 가루를 내 구워 먹는 서역의 빵 문화가 중원의 탕 문화를 만나 끓는 물에 조리하기 적합하게 변모한 음식이 바로 ‘국수’다. 건식 재료와 습식 조리법이 만난 동서 최고의 합작품이 바로 국수였다.

중국 최초의 국수인 수인병(水引餠)은 1400년 전 위진남북조시대에 기록된 <제민요술>에 나온다. ‘물에서 잡아 늘린 밀가루 음식’이라는 뜻이다. 산시(山西)성은 중국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면이 존재하는 곳이다. 밀가루 반죽을 순식간에 칼로 깎아 내려 면발을 뽑아내는 ‘도삭면(刀削麵)’, 한 가닥의 국수로 이뤄진 ‘일근면(一根麵)’, 고양이귀처럼 생긴 특이한 모양의 ‘고양이귀 국수’, 면을 뽑는 모습이 묘기인 ‘수타면’까지 수백 가지 진귀한 국수가 즐비하다.

중국 국수문화가 완성단계에 이른 것은 송나라 때다.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국수가 빨리 조리하고 빨리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가 된 것이다. 밀이 흔치 않은 중국 남부지역에서는 쌀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송나라에서 꽃피운 국수는 아시아로 퍼져 나가게 된다. 베트남 ‘분’, 태국 ‘카놈친’, 말레이시아 ‘락사’는 모두 쌀가루를 눌러 뽑은 쌀국수로 제조과정이 비슷하다. 티베트문화권을 거쳐 부탄으로도 전파됐다. 그런데 히말라야로 가로 막힌 인도에는 국수문화가 없다. 문명 교섭은 국수 전파경로와 일치했다.

국수를 먹고 있는 중국 하남성 할머니. 면과 국물, 양념이 모두 한 그릇에 담긴 국수는 훌륭한 한 끼 식사가 된다.

태생적 세계화·퓨전 코드

중국 북부의 압출식 메밀국수틀은 17~18세기 조선시대 한반도로 전해졌다. 강원도 정선에는 메밀로 만든 ‘꼴두국수’가 있는데, 가난했던 시절 물리도록 먹어서 ‘꼴도 보기 싫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꼴두국수는 뜨거운 장국에 말아 먹고, 역시 메밀로 만든 막국수는 차갑게 먹는다. 평안도 에도 국수틀로 메밀반죽을 눌러 뽑아 만드는 ‘평양냉면’이 있다. 평양냉면은 담백한 물냉면인 반면 함경도의 ‘함흥냉면’은 자극적인 비빔냉면이다. 한반도에 이렇게 독창적인 국수가 탄생한 데는 ‘김치’라는 토종 식문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본이 다시마와 다랑어포를 우려내 먹고, 동남아시아가 코코넛 밀크를 사용했다면 한국은 김치를 이용해 면을 만들어 먹었다.

한강 이남 평야지대에서는 밀로 만든 칼국수가 발달했다. 삼국시대에 중국에서 전래된 밀은 한반도에서 흔한 작물이 아니었다. 따라서 특별한 날이나 축제 때 만들어 먹는 음식이 밀로 만든 국수였다. 칼국수는 지역마다 콩가루, 녹두, 칡, 수수, 감자, 고구마, 옥수수와 같은 재료를 섞어 저마다 식감과 맛이 다르다.

일본은 송나라로 유학 간 승려들을 통해 면, 만두, 두부, 유바 등을 비롯한 국수문화가 전파됐다. 중국·한국과 관계없이 일본에서 자체 개발된 국수가 바로 소바다. 16~17세기 에도시대에 가난한 사람들이 구황작물인 메밀로 해먹은 면 음식이다. 18세기에 소바는 우동을 제치고 새로운 식문화로 대중화된다. 다시와 츠유에 들어가는 가츠오부시, 간장 같은 양념제조법 발전 덕분이다.

국수 한 그릇으로 식사하고 있는 중국 청년들. 거리 음식점에선 낯선 사람들도 둘러 앉아 함께 식사를 한다.

그렇다면 서양 국수인 스파게티는 어떻게 이탈리아에서 먹게 되었을까. 이슬람 건조 면에서 시작됐다는 가설이 유력하다. 지중해 한가운데 시칠리아는 이슬람 문화와 연결돼 있었는데 오래 저장할 수 있는 건조 파스타를 만드는 방법을 아랍인들이 전했다는 것이다. 중앙아시아 육로를 통해 중국의 국수가 아랍과 페르시아, 그리고 이탈리아로 전파됐다.

일본 닛신(日淸)식품 창업자인 안도 모모후쿠는 1958년 인스턴트 라면을 개발했다. 면을 삶아서 튀긴 뒤 말린 ‘마법의 라면’은 큰 인기를 끌며 국수문화가 없던 곳까지 식생활에 변화를 몰고왔다. 라면은 우주로도 진출했는데, 우주인용 라면은 면이 쉽게 풀어지지 않도록 점성을 더했다. 중앙아시아 초원 유목민의 주방에서 비롯된 국수가 이제 우주로 떠나는 21세기의 식량이 됐다.

수천 년 동안 수만 명의 손을 거쳐 탄생한 국수. 태생적으로 세계화와 퓨전 코드를 갖고 있는 음식이라 세계인의 인기메뉴가 될 수 있었다. 민족 이동에 따라 새로운 여행을 하기도 하고 변화무쌍한 변신을 꾀하기도 하는 국수는 어떤 식재료와도 잘 어울리며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몇 가지 재료만으로도 짧은 시간에 멋진 음식을 만들 수 있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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