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세실 레스토랑’과 같지만 다른 식당 ‘달개비’
18일 저녁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단일화를 위한 전격 회동을 가진 서울 정동 달개비 식당이 세간의 화제로 떠올랐다.
달개비 식당은 과거 민주화 세력의 사랑방으로 알려진 세실 레스토랑이 있던 곳이다.
1979년 문을 연 세실 레스토랑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이끌던 인사들이 즐겨 찾았다. 남녀가 선을 보면 꼭 이뤄진다고 해서 젊은 남녀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성공회 대성당의 부속건물에 있었기 때문에 민주화 투쟁을 하는 이들에게는 성공회 대성당이 명동성당처럼 보호막 구실도 했다.
국민의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는 야당이었던 한나라당과 보수인사들이 세실을 즐겨 찾았고,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때는 보수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자주 열었다. 그러던 곳이 운영 적자에 시달리며 2009년 1월10일 문을 닫았다. 이후 한정식 식당인 ‘달개비’가 들어왔다.
문재인·안철수 측의 단일화 약속 후 양측의 경제복지팀, 통일외교안보팀이 첫 모임 장소로 달개비를 택해 정책협상을 시작했다. 9월에는 문재인 후보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탈락한 손학규 전 대표를 이곳에서 만났다. 8월에는 안철수재단이 재단 명칭 유지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 이곳에서 회의를 진행했다.
고급한정식 ‘달개비’,?과거 ‘세실’ 전통과는 거리 멀어 ???
달개비는 어떤 곳일까??19일 점심에 찾아간 ‘달개비’는 세실 레스토랑의 외부모습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나 전혀 다른 곳이었다. ‘Conference House’란 입구 명찰대로?모임전문 고급 한정식 식당. 세실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었다. 달개비는 길가나 풀밭, 냇가의 습지에서 흔히 자라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들꽃이다.
이날 식당 주변은 고급차들로 가득했다. 자리를 찾는 기자에게 주인은 “예약을 하지 않으면 이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만석이란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기자에게 “사진을 찍을 거냐”며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홍보할만큼 홍보가 됐으니 더이상 소란(?)은 필요없다는 느낌을 받았다.?달개비는 일요일 휴업을 하지만 두 후보의 요청에 의해 회동자리를 내줬다고 한다.
이 일을 계기로 금융계, 언론계, 대기업 인사들이 줄을 이었다. DJ정부시절 김대중 대통령 동향출신이 운영하고 있던 광화문 신안촌에 정재계 인사들로 발디딜 틈 없던 풍경을 연상시켰다. 구석자리도 좋으니 다시 찾아봐 달라는 부탁에 어렵게 자리를 구해 들어갔다.
음식은 점심특선이 4만4000원부터 시작됐다. 그 외 6만500원(맑은물), 7만7000원(깊은산), 11만원(손님맞이 특별상차림) 코스 메뉴가 있었다. 단품 메뉴는 없다. 부담되는 가격이다.
점심특선으로 주문했다. 죽과 물김치, 샐러드, 메밀전, 보쌈, 왕새우구이, 너비아니 숯불구이와 샐러드, 대나무통밥(혹은 매생이 떡국), 식혜와 홍시가 순서대로 나왔다. 입맛 까다롭지 않은 기자에게 모든 음식이 맛있었다. 세금을 포함해 4만4000원짜리 식사가 맛없으면 반칙이지.
서민을 대표한다고 출마 이유를 밝힌 후보들의?회동 장소가 달개비였던 이유는 아마도 과거 세실의 흔적이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 같다. 보안유지도 중요했을 테고. 하지만 세실과 자리만 같을 뿐 속은 다른 곳이다. 좀 더 깊이 고민했다면 다른 장소에서 회동을 가졌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대선 후보들이 보안문제와 외부의 시선 때문에 회합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도 찾아보면 없을까. 면밀히 검토하고 이런 작은 것도?지켜보는 유권자가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줬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