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 ‘지붕위 고양이’와 로마의 ‘까미’, 그리고···
추석은 역시 자연과 농촌과 어우러져야 제격이다.
신경림 시인의 ‘농무’에서처럼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그래도 추석은 앞만 보고 달음질치는 이 바쁜 세상, 한 템포 쉬었다가라 한다.
삼청동 어느 양옥집 ‘지붕위의 고양이’가 갤럭시폰 카메라에 잡혔다. 추석 연휴 첫날인 지난 달?29일 대낮, 공연히 분주한 사람들 마음을 꿰뚫어 본 듯, “내 알 바 아니라”며 눈 껌벅껌벅하며 졸고 있다. 청와대가 불과 200m 지척인 그곳에서 지상 최고의 여유를 부리는 저 녀석, 이제부터 네 이름은?‘지붕위의 고양이’렷다.
13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면서도 정치인이라기보다 <꼬방동네 사람들> <어둠의 자식들> 등 현장소설을 쓴 작가로 더 알려진 이철용씨가 “미래를 예언하고 희망을 디자인하는” ‘通’ 지킴이, 족보이름은 ‘지바견’이다. 녀석은 늠름한 채, 말이 없다. 짖지도 않는다. “우리 주인님이 일러주신 대로만 살면 되는데, 뭐 나같은 개까지···”라며 말을 아낀다. 하지만 녀석은 안다. 주인 이씨가 자신의 여러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이 <들어라 먹물들아>임을.
털이 까매 ‘까미’인가? 이 녀석 한글을 아직 깨치지 못했나 보다. 아님 친구 집에 놀러온 것인가? 제 집은 딴 데 있는데 ‘모리’ 집 앞에 앉아 갖은 폼을 다 잡는다.
로마 한인성당 김종수 본당신부님이 추석날 아침 카카오톡으로 보내신 까미. 개집도 단독 대신 다층으로 꾸민 걸 보니 요즘 이탈리아 경제사정을 반영한 것은 아닐까, 엉뚱한 상상도 해본다.
징검다리 휴일까지 치면 2~3일 더 남은 연휴 ‘농무’를 한줄 한줄 소리내 읽으며, 잠시 추억에 잠기는 건 또 어떠실는지요?
농무(農舞) – 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가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이게나 맡겨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꺼나.
고개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