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권 칼럼] 기독교인의 ‘재물관’
쌓아놓은 재물과 쌓아놓은 권력으로 하나님의 자리에서 남을 핍박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구원부터 받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엄청난 재물을 응답으로 받고도 하나님의 도성을 바라보며 장막에 거하였습니다.
사망이 우리를 쏘는 이유는 자신의 것을 챙기고 쌓아놓다가 어느 날 불화살을 맞기 때문입니다. 쌓아놓은 재물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고 예수님을 따라갈 수도 없다면 이것이 곧 재앙입니다.
과거에 대한 죄의식, 현재의 연약함, 미래에 다가올 비극적인 일까지도 해결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문제를 해결 받은 것이 구원입니다.
자랑하라고 재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재물로 구원받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은 세상의 복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있다는 절대적 믿음을 갖는 것이 복입니다.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과 우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봅시다. 하나님이 주신 복의 의미를 알면 아브라함처럼 갈 바를 알지 못하나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이 지시하는 곳으로 떠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부르신 하나님은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셨습니다. 아비멜렉으로부터 사라를 구하신 하나님은 빈손이었던 아브라함에게 재물을 주어 부요케 하셨습니다.
고통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사라가 이삭을 잉태하여 웃음을 웃었듯이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고백할 때 진정한 행복이 찾아옵니다.
품속에 있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구원의 감격이 있어야 이 세상의 재물에 대한 통찰력이 생깁니다.
하나님 나라의 유업이 되는 재물과, 장애물이 되는 재물을 분별하는 힘이 없으면 응답 받아서 세속적으로는 성공해 놓고도 무너지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