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권 칼럼] 예수님은 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을까?

무화과나무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무화과 나무를 왜 예수님은 저주하셨을까 질문해 봅시다. 올바른 질문 안에는 회복도 있고 하나님의 계획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망하면 안되기 때문에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망하지 않는 길이 무엇인지 예수님께 질문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더구나 아직 무화과가 열매 맺을 철이 아닌데 열매가 없다는 이유로 예수님이 왜 그 나무를 저주하셨는지 질문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질문을 던지지 않은 이스라엘은 저주와 재앙이 임하여 155년간 후대들은 유리방황했으며
이후 2000번의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종교를 빙자한 물신주의에 빠져 성전의 거룩성을 훼손한 이스라엘 성전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엎으시고 채찍을 들어 쫓아내셨습니다.

교회는 불법을 저지르는 자들과 동맹을 맺어서는 안 됩니다.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귈 수 있습니까. 의와 불법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불법을 행하는 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집입니다. 더러운 소굴을 청소하여 하나님의 집으로 회복시켜야만 재앙이 멈춥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하나님이 없다 하는 어리석은 자들은 그 행실이 부패하고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림과 같이 우리를 버려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자녀들 또한 잊어버린다 하셨습니다.

오늘부터 하나님을 아는 지식, 창세기 3장 15절의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성전을 청결케 하는 도전적인 믿음을 가지십시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영, 성령을 힘입어 우리 내면의 더러운 것부터 내어쫓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다음으로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이 시대, 영적인 혼란에 대비하여 교회 안에 파고든 장사꾼 물신주의자들을 청소하는 것이 예수님이 모범으로 보이신 도전적인 믿음입니다. 

(마가복음 11:11-25, 고린도후서 6:14, 시편 14:1, 호세아서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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