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석의 新쾌도난마] 용산 미군기지 단상
한글날 ‘드래곤힐 라지 레스토랑’에서 천주교 신부와 언론사 간부 등과 식사를 했다. 음식 싸고 맛있기로 정평 나 있다. 스테이크, 연어 등속의 메뉴가 15달러 안팎. 지금은 평택 이전이 거의 끝나 기지 경내는 고요하며 숲만 무성하다.
들어갈 때 맡긴 신분증 찾고 정문을 통과하기 직전, 갈색 표지판 하나가 눈에 띈다. ‘일본군초소’. 광복 후 최근까지 미군이 점유했던 공간이 예전 일본군도 점유했던 공간이었다는 표시를 한글 표지판으로 걸어놓은 것이다.
용산 미군기지 하면 1986년쯤 있었던 해프닝이 떠오르곤 한다. 당시 이태원 근방에도 미군 병사들을 상대로 암암리에 서비스하는 누이들이 더러 있었다. 문제는 누이들 사이에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AIDS)이 창궐하기 시작한 거다.
필자는 당시 중앙일보에서 환경과 의학 담당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모처로부터 모찌(신문사에서 쓰는 ‘제보’의 일본식 표현)를 받았는데, 모월 모일 모시, 미8군 영내에서 ‘주한미군의 에이즈 감염실태 및 예방대책’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한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비공개라는 것. 미8군에 전화를 넣었다.
“귀 부대가 개최하는 세미나는 미군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누이들의 안위가 걸린 문제다. 세미나 취재를 허許하라!”
“애초에 비공개 개최를 전제로 추진한 세미나다. 취재는 불허한다.”
나와 그쪽 공보담당자 간에 입씨름이 오갔지만, 문을 열어줄리 만무. 그때 꺼내든 비장의 카드가 바로 ‘취재수첩’이라는 이름의 무기다. 요즘 신문에선 사라졌지만, 그 시절엔 사회면에 박스기사 형태의 취재수첩이 게재되곤 했는데, 출입처에서 일어난 촌극이나 에피소드, 또는 출입기자가 출입처의 장을 비롯한 고위 간부를 비판하는 취재원으로선 일종의 고약한 코너였다. 당하는 입장이야 죽을 맛이겠지만 해당 부처의 휘하 직원들마저 오히려 고소해하고 출입기자의 위상도 올라갈 수 있는지라 기사 취재보다 그 난에 올릴 아이템만 찾는 ‘게으르고 영악한’ 기자도 더러 있었다.
필자는 거기에 이렇게 썼다. “O…지난 모일 서울 용산 미군기지에서 ‘주한미군의 에이즈 감염실태 및 예방대책’에 관한 세미나가 개최됐으나 빗장을 걸어 잠그는 바람에 밀실 세미나로 끝났다. 분명 기지촌 여성들의 피해 실태도 다뤘을 텐데 공개하지 않는 저의가 의심스럽다…”
다음날 편집국장이 호출해 나와 주고 받은 대화다.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항의전화가 왔다. ‘담당기자가 어찌 그리 무례한가? 비공개라 했으면 그런 줄 알고 포기해야지. 가십으로 조질 건 뭐냐’고 그러더라. 사과를 기다린다고.”
“무례한 건 주한미군이다. 남의 나라 처자 몸 망가트린 주제에 실태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건 앞으로도 개선 노력을 하지 않겠다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냐? 사과는 그쪽에서 하라고 해라!”
공연히 편집국장과 말단 기자간의 언성만 높인 꼴이 됐다. 마침 기지촌 누이들을 돌봐주고 있던 에이즈 문제 전문가였던 주혜란 박사로부터 그날 세미나 내용을 간접 청취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건 그 사건 이후 미 대사관측과 오히려 친해져 후일 국제부로 옮겨서 미국담당 국제기자로 은퇴할 때까지 주한 미대사관 직원들 하고는 막역하게 지냈다. 덕수궁 뒤편 미 대사관저에 몇차례 초대도 받곤 했다.
기자는 역시 ‘순응형’이 아니라 ‘거역형’ 직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