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석의 新쾌도난마] 이스라엘 네타냐후는 피해자 코스프레의 고수?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상대로 나흘째 지상 작전 중인 이스라엘군은 3일(이하 현지시각) “레바논 관공서를 폭격해 은신 중이던 헤즈볼라 무장대원 15명을 사살했다”고 밝혔다. 또 지난 하루 레바논 남부의 목표물 2백여 곳을 공습, 헤즈볼라 대원 60여 명이 사망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이스라엘의 전방위 공격은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로켓 공격과 함께 지상군을 침투시키자, 그 보복으로 가자지구에 무차별 공습과 대규모 지상군 공격을 시도함으로써 촉발된 ‘제7차 중동전쟁’의 연장선상에서 이어지고 있는 자연스런 상황이다.
여기서 약방에 감초격으로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을 편 들어 주기 위한 미국의 눈물겨운 지원사격.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은 2일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과 관련 “이스라엘이 대응할 권리가 있다”고 손을 들어주었다.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도발 때도 어김없이 강력한 성명과 함께 대 이스라엘 무기 지원을 통해 노골적으로 이스라엘 편을 들어줘 왔으니 어쩌면 당연한 행보. 그나마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공격을 지지하냐는 기자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한 것이 약간의 여운을 남겼을 뿐이다.
1947년 5월 14일, 다비드 벤구리온(나중에 초대 총리)은 텔아비브 박물관에서 막무가내 독립을 선언한다. 유엔에서의 팔레스타인 분할안이 아랍국들의 거부로 무산된 직후다. 정식 국가 출범 바로 다음날 이집트·요르단·시리아·레바논·이라크 등 5개 아랍국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침공한다. 제1차 중동전쟁이다. 그 후 지금까지 7차례의 크고 작은 중동전쟁이 이어졌다. 하지만 오합지졸인 아랍국 연합군은 소수정예에 최신 무기로 무장한 이스라엘과 노골적인 미국의 지원 앞에 처음부터 속수무책, 결과는 보나마나였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지금껏 아랍국이라는 사악한 승냥이들 앞에 움츠린 불쌍한 케이넌 도그(이스라엘 국견)인 양 늠름한 흰머리수리(미국 국조)의 비호 아래 초라한 목숨을 이어가야 하는 ‘불쌍한 피해자 코스프레(victimhood costume play)’를 하고 있다.
우선 현재 무려 19년째(4년, 15년) 장기집권하면서 주변국을 화약내 풍기는 전장으로 초토화한 장본인, 75살 베냐민 네타냐후를 보자. 보수 성향의 ‘리쿠드-국민자유운동(약칭 리쿠드)’ 소속인 그는 1993년 44세에 리쿠드 대표를 시작으로 1996~99년 총리와 2003~2009년 제2차 리쿠드 대표, 2009년~현재 제2차 총리 등 당과 내각을 종횡무진하면서 이스라엘을 주무르고 있다. 참고로 히브리어 ‘리쿠드'(הַלִּיכּוּד)의 뜻은 ‘화합’, ‘연합’, ‘통합’이다.
문제는 네타냐후가 당명의 뜻과 정반대 행보를 가져 주변국 최대 골칫거리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10월 7차 전쟁 개시 직후부터 곤두박질친 지지율은 여름 직전 30%대까지 추락한다. 급기야 탄핵 위기까지 내몰렸다. 그러던 것이 헤즈볼라 지휘관들을 암살하면서 오르기 시작했고, 그것이 자신의 실각 가능성을 막을 유일한 묘책이라고 생각했는지 하마스, 헤즈볼라, 이란 등을 상대로 파상적 강공을 밀어붙이고 있다. 일종의 피해자 코스프레인 셈이다.
네타냐후의 코스프레가 얼마나 가식적이고 날조였는지 유대교 경전인 구약 성서를 토대로 살펴보자. BC 586년, 예루살렘은 신바빌로니아 네브카드네자르(구약엔 느부갓네살) 2세에게 함락, 완파되고 당시 유다 왕 제데키아(시드기야)는 제리코(예리고)에서 붙잡혀 시각장애인이 되었고, 대부분의 주민이 바빌론(지금의 이란 권역)으로 끌려갔다. 포로 규모는 부녀자 포함 4만5천명 안팎으로 당시 유다 인구의 5분의 1에 해당된다. 이것이 제2차 바빌론 유수幽囚(Babylonian Captivity)다.
이들은 70여년의 포로생활 후 나라가 바뀐 페르시아 키로스 대제(구약 표기 고레스)의 아량으로 귀환한다(구약 에스라 1~2장). 그렇다면 키로스는 대체 왜 유대인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냈을까? 구약엔 여호와가 키로스를 축복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이사야 45장 1절)
이 사건은 여호와가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을 징계하는 ‘회초리’로 이방 왕인 그를 썼다는 방증이다. 이쯤에서 팝송 한 곡 소개한다. 바로 “by the rivers of babylon, there we sat down/ yea, we wept, when we remembered Zion”으로 시작하는 ‘Rivers of Babylon’이다. 이 노래는 시편 137편 내용을 기초로 하고 있다. 가사는 포로생활에 시달리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갈 날을 눈물로 그리워하며 여호와에게 압제를 속히 풀어달라는 애절한 간구를 담고 있다.
1978년 독일의 디스코밴드인 ‘보니 엠(Boney M)’에 의해 싱글 출시된 이 음반은 영국 ‘싱글 차트’ 5주간 1위를 차지했고, 유로차트 ‘핫100’에서도 1위를 차지했는가 하면, 미국 ‘빌보드 핫100’에선 30위를 차지했다. 필자가 팝송까지 거론한 이유는 노래 가사처럼 이스라엘이 이란과 척 진다는 것은 조상이 바빌론으로부터 입었던 음덕을 저버린 파렴치한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더욱이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어간엔 당시 어려웠던 국가 승인에 이란이 재빨리 동참함으로써 한때 둘이 좋아 죽고 못 살았던 사이 아닌가!
다음으로 하마스가 이끄는 팔레스타인과의 관계를 보자. 유대인이 2천여 년의 표랑객漂浪客 신세를 끝내고 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데에는 팔레스타인의 배려가 있었다. 영국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지배하기 시작한 4년 뒤인 1926년 당시 영국 외무상이던 아서 밸푸어(Arther Balfour)는 이른바 ‘밸푸어 선언(Balfour Declaration)’을 한다. 이 선언은 일찍이 1917년 그가 고리대금업자 출신 거부인 유대계 독일 가문 로스차일드에게 돈 좀 대달라는 서신을 띄우면서 후일 선언의 골자가 될 내용이 담긴 서찰 맨 끝에 자신의 서명을 넣었기에 그리 불린다. 내용 중 눈여겨볼 대목은 다음과 같다.
“영국 정부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을 위한 ‘민족적 고향(National home for the Jewish people)’을 수립하는 것에 대해 호의를 갖고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중략> 이로 인해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비유대인의 정치적 권리와 종교적 권리, 또는 다른 모든 나라에서 유대인이 누리는 권리와 정치적 상황이 절대로 침해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납득하고 있습니다.”
이 선언에 근거해 아랍인들이 거주하고 있던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이 들어와 거주하게 된다. 팔레스타인은 결국 그들이 점유하고 있던 지경地境 중 상당 크기를 이스라엘에게 내어주었고, 이후 지금껏 ‘굴러 들어온 돌’로부터 온갖 구박과 박해를 받고 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아라비아 상인과 낙타’ 이야기가 딱 그것이다. 유대인들이야 구약 성경을 들어 “원래 내 땅에 내가 들어가겠다는데 무슨 소리냐!”고 주장하지만 건국 과정의 정당성을 생각할 때 이것 역시 상궤에 어긋난 행위가 아니냐는 느낌을 지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하마스가 진을 치고 있는 레바논을 보자. 성서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나무 중 하나가 바로 백향목, 그것도 ‘레바논의 백향목(Cedrus libani)’이다. 레바논산맥이 원산지라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문제는 이스라엘 왕조가 대대로 필요한 목재를 가져다 쓴 곳이 레바논, 그리고 백향목이라는 점이다. 솔로몬 왕궁 건축에도, 에스라가 성전을 수리할 때에도 그걸 가져다 사용했다. 그처럼 고대에 우애가 돈독했던 유다와 레바논, 그 사이를 먼저 파기한 주범은 누군가?
피해자 코스프레의 극치, 이스라엘? 그 맨 앞에 선 극단주의자 네타냐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