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부부 선택적 별성제도’, 자민당 총재 선거에도 영향?
한때 한국주재 일본인들이 모이는 장소이기도 했던 언니의 사업장에서 한 일본인이 내게 물었다. “언니는 성(姓)이 정(鄭)이어서 정상(鄭さん)이라고 부르는데, 너는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겠느냐?”
그 때 나는 어렸고 장난기가 발동해서 “시라유키히메(しらゆきひめ 백설공주)”라고 답했다. 그 후 한동안 주재원들 사이에서 나는 시라유키히메로 불리어졌다. 지금도 그 당시의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은 웃으며 나를 그렇게 부른다.
일본은 결혼을 하면 성(姓)이 남편의 성으로 바뀐다. 예를 들면 스즈키아야 (鈴木綾)가 기무라타쿠야木村拓也)와 결혼하면 기무라아야(木村あや)로 바뀐다. 그로 말미암아 지금까지의 자신의 면허증, 보험증, 은행계좌, 여권 등을 갱신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긴다. 또 직장 내 거래처에서도 갑자기 이름이 바뀌므로 혼선을 초래하기도 한다. 개인의 결혼과 이혼을 이름으로 알게 되어 사생활 침해 문제도 있다고 한다.
이에 또다시 부부 별성제도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도 부부가 동성(同姓)과 별성(別姓) 중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 도입 여부가 논란이 되었다고 한다. 여론의 대부분이나 일본의 경단련(経済団体連合会)이 조기도입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자민당 내에서는 ‘전통적인 가족관’을 중시하는 보수파를 중심으로 반대론이 뿌리 깊이 남아있어 후보들의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이미 입후보를 표명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과 고노다로(河野太郎) 디지털장관은 찬성의 입장이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성(姓)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고노 장관도 “선택적 별성(別姓)은 인정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9월 6일 출마를 표명할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 전 환경부장관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2019년 프리랜서 아나운서 타키가와(滝川) 크리스텔과 결혼 후 성(姓)을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 3명 모두 ‘포스트 기시다’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상위에 거론되는 인물들이다. 이 조사에서는 선택적 별성에 대한 찬성이 반대를 상회하는 결과를 보임에 따라 여론을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출마를 모색 중인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전 총무대신도 조기 도입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보수(保守)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고바야시 다카유키(小林鷹之) 전 경제안보담당 장관과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경제안보담당 장관은 도입에 신중한 입장이다. 고바야시 전 장관은 출마회견에서 이미 주민표 등에서 옛 성을 병기하는 것(舊姓倂記)이 인정되고 있는 것을 언급하며 “제도 개선을 널리 알리고 철저히 하여 현실적으로 요구에 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바야시 전 장관은 보수파가 많은 아베파의 중견·신진의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 파벌을 이끈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생전에 제도 도입에 부정적인 견해를 되풀이했다. 고바야시, 다카이치 두 사람 모두 보수층을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다.
한편 모테기 토시미츠(茂木敏充) 간사장은 작년 7월 한 회합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결정하는 것은 젊은 사람이다. 그러면 답이 뻔하지 않겠느냐”며 답변을 회피했다.
선택적 별성제도를 둘러싸고 경단련이 지난 6월 조기도입을 제안했고, 자민당은 7월 휴면 중이던 태스크포스를 재가동했다. 하지만 지난 8월 29일 열린 회의에서도 찬반양론이 있어, 총재선거 후로 논의가 미루어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새 자민당 총재의 관련 방침이 당내 논란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