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분뇨’는 잘 가리면서 ‘분노’는 못가리는 인생
시편 69편
“비방이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불쌍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시 69:20)
살아있다는 것은 곧 배설한다는 것입니다. 배설은 아주 중요한 생명 현상입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영양분을 섭취하고 남은 노폐물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행위를 합니다. 더러워 보이지만 생명체라면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활동입니다.
인간의 3대 기본 욕구를 식욕, 수면욕, 성욕이라고 하는데, 성욕 대신에 배설욕이 들어가야 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 일정 기간 성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배설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대변이나 소변을 얼마까지 참아보셨습니까?
노폐물은 신체만이 만들어내는 것은 아닙니다. 영혼이나 마음의 노폐물도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땀, 대변, 소변과 같은 것들은 신체적 배설물이지만 분노와 짜증, 스트레스는 마음의 배설물입니다.
일반적으로 만 3~4세가 되면 자신의 대소변은 잘 가릴 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마음에서 비롯되는 배설물은 어떻게 가려야 하는지 마흔이 되어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뇨는 잘 가리면서 분노는 못가리는 것입니다.
해결되지 않은 분노가 쌓여 하루 종일 분노가 마려운 상태로 생활합니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분노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줄 몰라서 옆 사람에게 싸지르는 형국이 오늘날 세상의 단면 아닌가요? 서로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살아가는 인생들이 적지 않습니다.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어디에다, 누구에게 나의 상한 마음을 쏟아 놓아야 하는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마음이 상할 때마다 하나님께 쏟아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쏘아붙이며 따지듯 기도할 때도 있었습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 34:18)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자기 마음이 상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십니다.
마음 상하지 않고 살 수 없습니다. 마음이 상하는 것도 생명 현상입니다. 내가 타인과, 세상과 상호 작용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상한 마음을 어디에, 누구에게 쏟아 놓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쏟아 놓으면 싸움이 되지만, 하나님께 쏟아 놓으면 기도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