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수·부·강녕·유호덕·고종명’ 5복과 ‘산상수훈’의 8복

자손이 많고, 이(齒)가 튼튼하고, 부부가 해로(偕老)하고, 손님을 대접할 만큼 넉넉한 재산이 있고, 장차 후손에게 좋은 일이 많이 생기게 될 명당 묏자리에 묻히는 것을 옛 사람들은 5복(福)이라 했다. 중국 청나라 학자 적호(翟灝)는 <통속편>(通俗編)에 ‘자손 많은 것이 복’이라고 썼다. 턱없이 낮은 출산율로 나라의 미래까지 걱정되는 이즈음, 자손 많은 것은 개인의 복에 그치지 않고 나라의 복으로까지 여겨질 만하다.

<서경>(書經 ‘홍범편'(洪範編)은 수·부·강녕·유호덕·고종명(壽·富·康寧·攸好德·考終命)을 5복으로 꼽았다. 돈 많고, 높은 지위에 올라, 건강하고 덕스럽게 오래 살다가, 자손 많이 낳고 편안히 죽는 것은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복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우리가 바라는 이러한 복들과는 사뭇 다른 복이 있다.

카를 블로흐 작 ‘산상수훈’

마음이 가난한 사람에게 약속된 하늘나라, 슬피 우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하나님의 위로, 온유한 사람에게 보장된 이 땅에서의 사명과 보람 , 정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앞에 실현될 하나님의 공의, 긍휼한 사람에게 다가오는 하나님의 자비, 마음 깨끗한 사람이 얻게 될 하나님의 사랑, 평화를 위해 애쓰는 사람이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 정의를 위해 핍박받는 사람에게 약속된 하늘의 큰 상… 예수가 가르친 산상수훈의 8복이다.

장수나 건강, 부귀영화나 자녀 형통의 세속적 행복은 산상수훈의 8복과 아무 관계도 없다. 서른셋 젊은 나이에 십자가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머리 둘 곳조차 없었던 예수에게는 부귀영화를 누리며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나 많은 자손을 구하는 5복의 기원은 가당찮아 보인다.

​그렇지만 일자리 찾기도 어려운 오늘의 현실에서는 삶의 기본조건인 의식주의 문제가 최소한으로나마 충족되는 것이 가장 절실한 소원일 것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슬픔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당장 아쉬운 것은 보이지 않는 하늘나라나 하나님의 위로보다는 눈 앞의 어려움을 해결해줄 현실적 도움의 손길임에 틀림없다.

온유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땀 흘려 일하는 땅의 수고가 아니라 시세 높은 부동산 자산일 수 있고, 정의의 투사에게 절실한 것은 머나먼 하늘나라의 공의가 아니라 지금 곧 실현되는 이 세상의 정의일 것이다. 그리고 평화의 일꾼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보다 노벨평화상이 훨씬 값진 것일 수 있겠다.

​탐욕스런 이기주의자들과 지배욕에 굶주린 권력중독자들이 득실대는 오늘 우리 사회에서, 산상수훈의 8복은 우리가 바라는 5복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의 복을 제시한다.

산상수훈의 복은 ‘지금 여기의 삶과 죽음’을 값지고 보람 있게 만드는 내면적·인격적인 가치다. 우리의 5복은 땅에 머무는 것이고, 예수의 8복은 하늘에 이르는 것이다. 우리가 추구할 궁극의 복은 신(神)의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현실의 우리 삶속에서도 이뤄지는 복이다.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고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라.” 사도바울의 가르침이다(골로새서 3장 2절). 땅의 것을 깡그리 무시하라는 비현실적인 교훈이 아닐 것이다. 위에 있는 것이야말로 땅의 것을 가치 있게 만드는 복의 근원이라는 영혼의 가르침일 터이다.

지금 우리의 기도는 땅의 5복을 애원하고 있는가, 하늘의 8복을 간구하고 있는가? 우리가 바라 마지않는 5복의 기원들이 산상수훈의 8복 앞에서 문득 부끄러워진다. 아니, 덧없이 무너져내린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