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혜미의 글로벌 라이프②] 뉴질랜드에서 봉사활동이 중요한 까닭
나누는 삶이 가져다 준 ‘기쁨’이라는 선물
내가 살았던 뉴질랜드의 웰링턴 시내에는 ‘슾 키친’(Soup Kitchen)라는 곳이 있었다. 지역신문에 소개 된 그곳을 방문해 보니 노숙자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제공하는 가톨릭 계통의 자선기관이었다. 식자재를 도네이션하는 사람을 비롯하여 운반, 조리, 배식, 설거지 등의 봉사를 통해 다양한 모습으로 이웃과 사랑을 나누는 아름다운 섬김의 장(場)이었다.
베이커리에서 도네이션하는 남은 빵을 운반하는 봉사자들은 퇴근 후 빵을 그곳에 배달한다. 바쁜 저녁 시간에 조리담당 봉사자들은 신속하게 요리를 만든다. 배식 후 설거지는 지역내의 고등학교에 다니는 남학생들이 순번제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눈을 의심케 하는 사건이 있었다. 걸음 걷는 것이 무척이나 불편해 보이는 장애 여학생이 노숙자들이 다 사용한 식판을 아주 천천히 주방으로 나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에게는 그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지만 열심히 봉사하는 그 여학생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마침 옆에 서있던 그 여학생의 어머니와 잠깐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신체 장애로 인해 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던 이 여학생은 자신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서 매주 이곳에 봉사하러 온다고 했다. 그 여학생의 미소 띤 행복한 얼굴은 이민생활에 적응하느라 심신이 지쳐있던 나에게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왔다.
이민초기에 영어가 부족하여 남의 도움을 받으며 의기소침했던 내 자신의 부정적인 모습을 그 여학생을 통해서 새롭게 비춰보게 된 것이다. 장애를 가졌지만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됨으로써 자존감을 회복하고 기쁘게 살아가고 있는 이 여학생 통하여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자원봉사는 능력이나 효율보다는 성실성과 열정적인 마음이 우선이라는 사실이었다. 영어소통에 자신이 없다는 것이 장애로 느껴져서 매사를 망설이며 아무 것도 시작하지 못하던 내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그 후 내가 ‘슾 키친’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한 것을 알게 된 지인이 자신이 운영하는 스시 가게에서 남은 음식들을 흔쾌히 도네이션 해주기로 하여 나는 ‘슾 키친’에 배달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매주 화요일 저녁 교통체증으로 주차와 시내운전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 상황에서 콧노래까지 부르며 즐거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도착하기도 전에 스시를 먹기 위해 긴 줄을 서 있는 노숙자들 중에는 “비싼 스시를 도네이션 해주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냐고” 내게 묻는 사람도 있었다.
내 삶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 기쁨을 혼자 누리기 아까워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던 딸에게도 자원봉사를 권유해보았다. 대학에 가면 공부 때문에 바빠질 텐데 지금 봉사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으니 흔쾌히 승낙했다. 그래서 딸에게 커다란 배낭과 손가방을 준비해 주었다. 목요일 하교 후에 스시를 넣은 큰 배낭을 메고 양손에 스시를 넣은 작은 가방을 들고 20분을 걸어서 ‘슾 키친’으로 향하는 딸의 모습이 어쩌면 뭇사람들의 눈에는 안쓰러웠을지도 모른다. 마치 내가 처음 만났던 식판을 나르던 그 장애 여학생을 보는 것처럼… 그렇지만 딸은 성실하게 그 일을 해냈고, 그 대가로 삶 속에서 누리는 색다른 기쁨을 선물로 받게 되었다. 나는 그 경험을 통해 뉴질랜드 교육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봉사활동이 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인지 명확하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