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의 세상읽기] 셰익스피어의 시대, 디킨스의 시대

세상 어디에든 사람들 사이에서는 서로 다른 생각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견의 한가운데에는 제법 탄탄한 자기주장과 합리화가 자리 잡고 있어 사회 내 갈등은 물론 자연스럽게 국경을 넘어 세계적인 현상이 되기도 한다.

권력을 가진 자와 권력을 가지려는 자, 혹은 권력이라는 가지의 끝자락에 매달려 있는 자, 종교를 가진 자와 신을 부정하는 자, 혹은 다른 종교를 거부하는 자. 부를 가진 자와 부를 갈망하는 자, 그리고 그들을 비난하는 자, 그 외에 수많은 구분이 발생하고 사람들은 자신이 발을 딛고 서 있는 공간에서 자기의 입장을 옹호하면서 반대편을 경계하고 비판한다.

셰익스피어

영국이 “셰익스피어와 인도를 바꾸지 않겠다”라는 말은 사실 비평가이자 역사가인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의 “인도의 풍부한 재물을 잃는다 해도 영국의 셰익스피어는 잃고 싶지 않다”라는 다시 말해, 영국은 언젠가 인도를 잃게 될 것이지만, 셰익스피어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에서 기원이 되었다. 그만큼 셰익스피어에 대한 영국인들의 애정과 자부심을 표현한 말이다.

이 말을 듣고 화가 난 인도인들이 “영국과 인도 식당을 바꾸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며 맞불을 놓았다는 말이 우스갯소리처럼 회자된다. 인도 사람들의 성정을 생각해볼 때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영국의 일간지 <더 타임즈> 조사에서 영국인들은 2000년 새로운 세기를 시작하면서 역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처칠에 이어 두 번째로 셰익스피어를 꼽았다. 세 번째가 다이애나 세자빈이었으니 위대한 작가에 대한 영국인들의 애정이 얼마나 큰지를 짐작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는 잉글랜드가 대영제국으로 발전할 토대를 마련한 엘리자베스 1세와 그 뒤를 이은 제임스 1세 통치기에 활약했다. 여왕의 종교개혁, 성공적인 경제와 사회개혁,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 개척, 스페인 무적함대 격파 등에서 기인한 국민의 일치단결과 애국심의 고조는 셰익스피어 작품에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끼쳤다.

엘리자베스 1세와 제임스 1세 두 명의 왕이 통치하던 시기는 영국 문학사에서도 가장 화려한 시대였는데 1564년 잉글랜드 중부 ‘스트래트퍼드 어폰 에이번(Stratford-upon-Avon)’에서 출생한 셰익스피어는 1616년 52세 나이로 사망하기까지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극작가였다. 그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리어왕>과 <햄릿> 등 ‘4대 비극’을 포함해 주옥같은 작품을 남기면서 명성을 떨쳤다.

셰익스피어 활동 시기에 영국은 과학, 종교 등 많은 분야에서 새로운 사상이 등장하여 지적 혁명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시대가 변하면서 중세적 사상은 퇴조의 길을 걷게 된다. 문학도 예외가 아니어서 귀족풍의 작품에는 과거와 달리 대중적인 설화가 들어가고 희극에는 로맨스가 포함되는가 하면 비극에는 풍자와 해학이 버무려졌다. 이 중심에 셰익스피어가 있었다.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업적을 축하하는 의미로 런던의 템스강변에 설립한 극단을 왕의 허락을 받아 ‘왕의 극단(King’s Men)’으로 개명하는 영예도 얻었다.

그런데 여기에도 서로 다른 생각이 존재한다. 실제로 대부분 영국 국민이 셰익스피어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표하지만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세계적인 대문호보다 선호하는 작가가 따로 있다.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시대 최고 인기작가였던 찰스 디킨스(1812~1870)가 바로 그다.

빅토리아 시대는 영국사에서도 번영의 시기였으며 제2의 영국문학 전성기이기도 했다. 이 시기 디킨스는 영국 사회의 성장과 풍요 이면의 음습하고 우울한 사회에 주목한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인 에릭 홉스봄은 산업혁명 이후 국제사회의 급격한 사회변동을 추적하여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역사서 3권을 저술하였다. <혁명의 시대, the Age of Revolution; 1789-1848>, <자본의 시대, the Age of Capital; 1848-1875>, 그리고 <제국의 시대, the Age of Empire; 1875-1914>가 바로 그것이다.

찰스 디킨스

디킨스는 (홉스봄이 저서에서 주장한 자유, 평등, 인권의 가치와 사회주의가 등장하는) ‘혁명의 시대’를 거쳐 (경제적 부가 최고의 선으로 평가받는) ‘자본의 시대’ 기간에 영국에서 성장하고 작가로 활동했다. 디킨스 시대 영국은 셰익스피어 시대와는 사뭇 달랐다. 디킨스는 셰익스피어처럼 슬프면서도 감동을 주는 진중한 비극도, 우스우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위대한 희극도 남기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캐럴, A Christmas Carol>, <데이비드 코퍼필드, David Copperfield>, <두 도시 이야기, A Tales of Two Cities>, <위대한 유산, Great Expectations> 등이 우리에게도 익숙한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비록 세계적인 지명도에서 셰익스피어와 비길 바는 아닐지 모르지만, 디킨스는 자신이 몸소 체험하며 알게 된 사회 밑바닥의 생활상과 애환, 부조리한 사회문제와 불평등, 세상의 모순과 부정한 현실을 섬세한 작가의 눈으로 외면하지 않았고 작품을 통해 드러내는 노력을 계속했다.

디킨스 시대의 사회는 어땠을까.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자 작가로서 명성을 얻게 해준 <올리버 트위스트, Oliver Twist>는 1837년 출간된 그의 두 번째 소설이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자본의 힘이 세지고 노동자의 숫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던 시기였다. 대부분 국가의 산업화 과정에서 나타난 것처럼 노동자 대부분은 농경사회의 급격한 변화로 농업을 포기하고 더 많은 수입을 쫓아 대도시 변두리로 진입하던 소시민들이었다. (우리에게도 1970년대 초반부터 80년대 중반에 걸쳐 그런 시기가 존재했다).

통계에 따르면 1801년 1,117,000명이던 런던 인구는 1851년 2,685,000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고, 에든버러와 리버풀, 그리고 버밍엄 같은 영국 대도시 인구도 같은 기간 3~4배에 이르는 급격한 증가세를 보였다. 따라서 값싼 노동력이 증가함으로써 불평등이 심화되고 자본이 기준이 되는 계층 간 구분은 자연스럽게 발생했다.

사실 영국은 1597-98년에 마련되고 1601년 보완된 가난한 사람을 돕는 ‘구빈법(the Poor Laws)’이 시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개인 재산을 중시하는 풍조가 확산하고 그 결과 부유층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는데 그들의 부(富)는 상상을 초월할만한 규모였다.

부가 국가 발전의 동력으로 평가되면서 상대적으로 빈민계층에 대한 정부의 책임은 새로운 빈민법이 시행되면서 축소되어 서민의 고통 또한 상상하기 어려울 지경으로 떨어지게 된다. 이와 더불어 주택의 부족, 범죄의 증가는 물론 환경문제와 전통적인 여성의 지위 변화에 대한 부가적인 문제들도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급격한 사회변화 속에서 디킨스는 길거리를 헤매다 구빈원에서 아이를 출생한 여인이 세상을 떠난 후 보육원에서 온갖 학대와 사회의 차별 속에서 성장하는 고아 소년 올리버 트위스트를 통해 당시 영국 사회 제도와 모순을 차분하게 비판한다.

어디 영국뿐이었으랴. 당시 산업혁명의 바람은 유럽 전역에 걸쳐 확산하였는데 산업화가 진행된 대부분 유럽국가에서 디킨스가 주목한 빈곤, 열악한 노동환경, 사회의 부조리와 비리가 가져온 사회적 불평등은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칼 마르크스(Karl Marx)가 그의 나이 만 30세 혈기 왕성한 시기에 전 세계 노동자들의 단결을 촉구하며 저술한-책이라기보다는 팸플릿 수준의 간략한 분량인-<공산당 선언, the Communist Manifesto>이 산업화가 팽창하던 1848년에 발표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시대의 유혹에 끌리지 않는 문학이 있으랴.
문학은 시대와 더불어 산다.”

1972년 처음 발간된 <문학사상> 잡지를 펼쳐보고 있다. 그리고 1980년대, 1990년대, 그리고 또 2000년대에 발행된 잡지를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작가들이 작품마다 충실하게 당시 사회를 이해하고 해석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도 어수선한 이 시대에 문학작품의 충실한 독자만한 사람들이 있을까 싶다. 문학은 세대를 초월하고 아무리 오래된 작품이라 할지라도 꾸준한 사랑과 관심 속에 시대를 이야기하고 독자와 대화하며 사랑받고 있으니 말이다.

세간의 여론이야 어떻든 셰익스피어와 디킨스같이 자신들이 숨 쉬고 살아가는 사회라는 공간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해석하는,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장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시대를 상징하며 꾸준히 사랑받는 그런 작가들을 가진 영국 사회는 정신적으로 풍요롭다.

재능을 가진 작가들이 시대의 소임에 충실하고 시민들은 그들의 노력에 찬사를 보내며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식, 그것이 해가 지지 않던 영국을 만든 전통이 아닐까.

영국을 대표하는 셰익스피어와 디킨스 두 작가도 자신들의 시대를 살면서 평생 그런 노력을 했을 것이다. 각자의 주장이 사회 내부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을 보면 서로 다른 의견을 넉넉하게 포용하는 영국이라는 나라에서 교훈으로 얻을 만한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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