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의 세상읽기] 조앤 롤링…절벽의 가장자리 무명작가에서 최고 베스트셀러로

조앤 롤링과 <해리포터의 모험>

날씨에 관한 한 특별히 할 말이 없는 영국인들에게 이베리아반도로의 여행은 조금 특별하다. 늘 잔잔한 비와 음습한 환경, 그에 어울리는 우울한 표정들. 그래서 자연의 따뜻함이 그리운 그들에게 온화한 기후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진 햇볕이 풍부한 남부유럽의 스페인과 포르투갈로의 여행은 계획을 짤 때부터 마음이 설렌다.

햇볕에서 잘 익은 포도주의 향긋함. 지중해식 채소가 풍부한 식탁, 게다가 다양한 생선과 자연에서 키운 넉넉한 양의 육류까지.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와 빌바오 같은 해안을 끼고 형성된 도시나 마요르카섬은 말할 것도 없고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과 서부의 포르투와 남부의 라고스나 파로 같은 항구도시에서 머무는 여행은 건조한 영국 사람들의 생각을 상큼하게 바꾸어 주기도 하고 덤덤한 표정을 미소 짓게 만든다.

조앤 롤링(Joanne K. Rowling)의 포르투갈 여행은 다른 사람들처럼 가슴 설렜다. 첫 직장인 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 런던지부에서 통번역을 담당하는 비서로 근무하는 중 업무시간에 소설을 쓰다가 들켜서 해고되었다. 글 쓰는 습관은 작가 지망생에게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일상이었나 보다. 이후 변변한 직업 없이 지내다가 광고를 보고 모국어인 영어를 가르치러 포르투갈로 떠났던 여행이니 부담이 큰 것도 아니었다. 넓은 대서양을 끼고 있는 이름 그대로 항구도시인 포르투(Porto)에서 롤링은 밤에는 영어를 가르치고 낮에는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즐겨들으며 글을 썼다.

혼자 떠나서 3년여 만에 둘이 돌아왔으니 그녀의 여행은 조금은 특별했다. 그런데 스토리가 우리의 예상을 벗어난다. 혼자였던 출국과 달리 롤링의 귀국 비행기에는 생후 4개월이 된 딸 제시카(Jessica)가 있었다. 3년여 머물던 포르투에서 만난 포르투갈 국적의 남편 조르주 아란테스(Jorge Arantes)와는 결혼 13개월 만에 별거에 들어가면서 귀국했는데 결혼 2년 후인 1994년 8월 공식적으로 이혼한다. 사유는 남편의 빈번한 구타와 학대였다.

귀국 후에는 친정이 있는 글로스터셔(Gloucestershire)가 아닌 여동생이 살고 있는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Edinburgh)에 정착했다. 친정으로의 귀소본능이 강한 우리네 여인들과는 조금 달랐다. 그곳에서 롤링의 절박한 삶이 시작되었다. 이혼녀, 싱글맘, 아이 양육, 가장으로서의 경제적 어려움.

잉글랜드 서남부 명문 엑시터대학(Exeter University)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글 쓰는데 재능이 있던 롤링이 직업을 구하기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지 모르지만 홀로 아이의 양육과 일을 병행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 기간 힘든 생활로 인한 좌절로 그녀는 우울증을 앓았고 자살을 고민하기도 했다. 다행히 사회보장제도가 발달한 영국에서 싱글맘을 그냥 굶게 놔두지는 않았다. 극빈자 가정에 지급되는 수준의 정부 보조금이 겨우 살아가는 유일한 수입원이 되었다. 그런 여건 속에서 롤링은 집 근처 카페를 전전하며 글을 썼다.

평범한 영국 사람들의 식사는 정말 간단하다. 아침에는 시리얼에 잼과 땅콩버터를 바른 토스트와 삶은 달걀 하나, 그리고 커피 한잔, 점심에는 햄과 치즈가 들어간 토스트, 혹은 오븐에 감자를 열십자를 내서 그 안에 버터와 새우, 버터와 치즈, 혹은 버터와 으깬 달걀과 삶은 옥수수를 넣어 구운 ‘재킷 포테이토(Jacket potatoes)’라고 부르는 감자요리와 티 한잔, 저녁에는 삶은 야채와 으깬 감자, 그리고 스테이크를 먹거나 종종 라사냐, 스파게티, 파스타 등을 소금과 후추만 달랑 뿌려 먹는다. 음료는 오렌지 주스를 조금 마시지만 대개 잉글리시 티(English tea)가 전부다. 이렇게 매일 먹는다. 세상 주부 중에 영국 주부가 제일 쉽지 않을까 싶다. 아프리카만 해도 움막에서 불을 피우는 것을 식사 준비의 시작으로 하는 풍경과 비교해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롤링이 받은 정도 금액의 보조금이면 고기를 먹는 식단을 빼면 기본적인 식단으로 아주 빠듯하게 생활한다. 옷은 사계절의 온도 차이가 그리 크지 않으니 젊은이들은 반소매 셔츠에 스웨터류의 상의와 청바지 하나면 사계절을 거뜬히 지낼 수 있다. 더우면 벗어서 어깨나 허리에 두르고 추우면 다시 입으면 된다. 다행히 아이의 우유값 정도의 보조금이 별도로 나오니 롤링이 단골로 들르던 카페에서 티나 커피 정도는 마실 여력이 겨우 되었을 거다. 거기에서 롤링은 글을 썼다. 몸으로 하는 일이 맞지 않았으니 유일하게 재능이 보이던 글 쓰는 일에만 매달렸다.

1990년 첫 직장인 엠네스티에서 근무 중 맨체스터에서 런던으로 가는 기차의 출발이 지연되었을 때 떠올랐던 생각이 작품의 근원이 되었다. 이후 어머니의 죽음, 첫아이의 탄생, 남편과 이혼, 경제적 궁핍 등의 시련과 고통의 시간을 가까스로 견디며 7년 후인 1997년 첫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그것도 12개 출판사에서 출판을 거절당한 이후다.

애매한 현실 속에서 ‘글을 쓰면서 성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사고가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안다. 그녀의 일상이 얼마나 절박한 심정이었을지 짐작이 된다.

롤링의 성공 스토리는 이제 우리가 잘 아는 신데렐라의 이야기가 되었다. ‘무일푼에서 거부로(Rags to Riches)’가 그녀의 성공을 나타내는 상징어가 되었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완결까지 전 세계 7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5억부 이상 판매되었고 출간 직후부터 9년간 약 308조원에 달하는 수익을 냈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간판 산업인 반도체 수출보다 77조원을 더 벌어 1.3배 더 큰 수익을 내기도 했다니 제대로 구성된 탄탄한 문화콘텐츠가 고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준 셈이다.

덕분에 롤링은 포브스 선정 세계 여성 부호 1위에 오른 적이 있었고 (그 후 순위가 내려간 적이 있었는데 그녀가 평소 관심을 두고 있던 홀 부모 가정, 고아, 병약한 어린이 돕기, 성소수자의 인권 등 자선단체에 거액의 금액을 기부한 게 이유라고 한다). 왕실로부터도 훈장과 작위를 받으며 지금까지 영향력이 있는 여성으로 손꼽힌다.

영국은 세계적인 출판 강국이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있는 영국 작가를 손꼽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셰익스피어부터 제인 오스틴, 찰스 디킨스, 버지니아 울프, C.S. 루이스, D.H. 로렌스, 서머셋 몸, 브론테 자매, 제프리 초서, 조지 엘리엇, 조지 오웰, 조지프 콘라드, 러디어드 키플링, 로알드 달, 올더스 헉슬리, 알랭 드 보통, 이언 플레밍, 일리어 골딩, 존 르 카레 등 얼핏 생각나는 소설가들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다. 알랭 드 보통은 스위스에서 태어났지만 영국에서 자란 소설가다.

영국의 출판산업은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 영화나 음악산업보다 그 규모가 크다. 출판산업은 세계적 공용어가 된 영어를 바탕으로 국내외 시장에서의 성공을 통해 작품성, 제작 능력, 홍보 및 판매력 등에서 다른 국가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뛰어난 경쟁력을 갖고 있다. 게다가 출판산업을 영화나 연극, 음악, 미술, 뮤지컬, 발레 등 다른 문화 예술 분야로 연계하는 뿌리로 인식하면서 창의적 발상을 통해 다시 새로운 산업으로 재탄생시키는 효율적 운영을 자연스럽게 도모한다. 영국의 출판산업이 한 가지 콘텐츠의 성공을 그 분야에 그치지 않고 수백, 수천 가지의 상품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는 창의적인 역량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작품의 성공이 가능한 것이다.

학기 내내 학교 도서관에서 독서대에 두꺼운 소설책을 올려놓고 양손의 엄지와 검지로 한줄 한줄 짚어 내려가며 심각한 표정으로 독서하던 영국 친구가 생각난다. 존스(Johns)라는 이름의 친구는 독서에 집중하느라 늘 말라 있는 건조한 토스트를 입에 물고 옆에 작은 페트병 Diet Coke을 마시며 종일 책을 읽던 영문학을 전공하는 잉글랜드 중부 셰필드 출신이었다. (셰필드는 영화 <풀 몬티 The Full Monty>의 배경이 되는 제강과 석탄산업으로 유명한 잉글랜드의 대표적인 중공업 도시다).

금발과 갈색이 섞인 머리에 키가 훤칠하고 얼굴에는 주근깨가 조금 남아있는 초록색 눈빛을 가진 사려 깊고 순수한 친구였다. 그는 문학을 전공하는 자신의 처지를 종종 힘들어했다. 뛰어난 작가로서의 재능은 안보이고 그렇다고 다른 분야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졸업 후 진로는 누구에게나 막연한 법이니 그저 주어진 시간에 열심히 공부나 하자”고 위로하면서 그래도 “너희는 영어를 가르치며 세상여행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라며 부러움을 표하기도 했다.

이제는 힘든 시절을 구름처럼 멀리 떠나보내고 세계적인 작가로, TV와 영화 제작자로, 자선가로, 또 재혼하여 꿈꾸듯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조앤 롤링의 신데렐라 스토리가 오늘도 좁은 공간의 작은 책상 위에서 창작 의지와 열정을 불태우는 많은 이들에게 반향의 거울이 되길 기원한다.

그리고 내 착한 친구 Johns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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