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냄새 따라 움직인 사나이들…푸세와 딸레랑의 두 얼굴

프랑스혁명은 수많은 정치인과 귀족, 혁명가들을 단두대로 몰아넣은 격변의 시대였다. 그러나 그 혼란 속에서도 권력의 흐름을 읽으며 살아남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조제프 푸세(Joseph Fouché)와 딸레랑(Talleyrand)이 대표적이다.
조제프 푸세는 프랑스 혁명의 대표적 풍운아로 꼽힌다. 그는 공포정치를 통해 왕과 왕비, 귀족과 반혁명분자들을 단두대로 보낸 로베스피에르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로베스피에르의 여동생과 약혼까지 했던 사이였으며, 당시 두 사람은 혁명 권력의 핵심에 있었다.
푸세는 리옹 반군 2천여 명을 학살한 뒤 입지가 흔들리자 로베스피에르에게 통사정을 하며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이후 상황이 바뀌자 로베스피에르 타도 공작에 가담했고, 결국 로베스피에르는 단두대로 향했다.
이후 푸세는 낭인 생활을 하다가 총재정부의 폴 바라스에게 접근해 탐정 직함으로 정적과 민심에 관한 정보를 수집·가공해 제공했다. 이어 나폴레옹이 권력을 장악하자 경찰장관 자리를 11년 동안 유지했다. 하지만 동시에 나폴레옹의 힘이 약해질 조짐이 보이면 축출 운동을 기도하며 기회를 엿봤다.
뒤이어 왕정 체제가 들어서자 그는 나폴레옹 실각에 기여한 공을 내세워 다시 경찰장관에 임명됐다. 그러나 루이 16세 처형에 찬성표를 던졌던 과거가 문제 되면서 불과 7일 만에 해임됐고, 결국 추방돼 오스트리아에서 생을 마감했다. 향년 61세였다. 그의 음모로 단두대에 오른 로베스 피에르보다 25년 더 살았다.

혁명기 또 다른 정치 생존자로는 딸레랑이 있다. 본명은 샤를 모리스 드 딸레랑 페리고르다. 절름발이 가톨릭 주교 출신이었던 그는 혁명에 참여한 뒤 영국대사와 미국 망명 경험 등을 바탕으로 외교 전문가로 활동했다.
딸레랑은 나폴레옹 정부에서 외무부 장관을 지냈으며, 푸세와 손잡고 나폴레옹 타도 운동에도 참여했다. 그는 혁명 이후 공화정과 제정, 왕정 등 6개 정치 체제를 거치는 동안 무려 13명의 통치자를 섬겼다. 84세까지 장수한 그는 권력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움직였다.
딸레랑은 상대가 불리하고 자신에게 유리하면 서슴없이 뇌물을 요구했고, 여성 관계에서도 거침없는 삶을 살며 사생아를 20명이나 두었다.
또 딸레랑과 푸세는 서로에게 이익이 되면 손을 잡고, 손해가 되면 등을 돌리는 관계였다. 혁명과 제정, 왕정복고로 이어지는 격변 속에서 두 사람은 끝까지 현실 정치의 중심에서 살아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