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세계

[김중겸의 경찰이야기] 변장이 곧 수사였다…1911년 런던 형사들의 오감 추리법

일요일 외출복(Sunday best)을 갖춰 입은 1911년경 영국 경찰

1911년, 지금으로부터 약 125년 전 영국 런던의 형사들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거리를 누볐다. 오늘날 경찰 제복이나 수사 장비를 떠올리면 쉽게 상상하기 어렵지만, 당시 런던 형사들은 실크 모자와 지팡이, 정장 차림으로 ‘일요일 외출복(Sunday best)’을 갖춰 입고 범죄 현장에 나섰다.

사진 속 형사들은 단정한 수트와 중절모, 지팡이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격식이 아니라 수사 기법의 일부였다. 당시 형사들에게 복장은 곧 위장이었고, 상황과 장소에 따라 신분을 숨기는 ‘변장(disguise)’은 필수적인 수사 기술로 여겨졌다. 부유한 신사로 보일 때도 있었고, 항만 노동자나 거리의 부랑자로 변신해 범죄 현장 깊숙이 들어가기도 했다.

1911년경 영국경찰

또 바로 위 사진처럼 형사들이 런던 라임하우스 지역에서 수사를 벌이기 위해 완전히 다른 차림을 하고 있다. 헐렁한 작업복과 낡은 모자, 거친 표정은 앞선 사진과는 전혀 다른 인상을 준다. 수사 대상이 있는 공간과 사람들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위한 선택이었다.

당시 수사관에게 요구된 자질은 단순한 체력이나 무기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예리한 감각과 관찰력이 중요했다. 소리만 듣고도 이상 징후를 감지하는 귀, 주변 환경과 사람들의 미세한 변화를 읽어내는 눈, 말투와 행동에서 상대의 속내를 파악하는 입과 태도가 필요했다. 냄새 또한 중요한 단서였다. 범죄 현장은 향기롭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냄새의 미묘한 차이를 통해 정보를 얻어야 했다.

이처럼 오감을 통해 수집한 정보는 결국 ‘추리(reasoning)’로 이어졌다. 형사에게는 현장에서 얻은 단편적인 단서들을 엮어 범인의 성격과 행동, 다음 수를 예측하는 사고력이 필수였다. 그래서 당시 형사들은 ‘귀와 눈, 코를 갖춘 사람’이자 동시에 ‘머리로 사건을 풀어내는 사람’이어야 했다.

현장 적응력 또한 중요한 덕목이었다. 수사 대상의 직업과 신분, 생활환경에 어울리는 옷차림과 매너를 갖추지 못하면 수사는 시작조차 어려웠다. 총이나 무술보다 중요한 것은 눈에 띄지 않는 존재가 되는 능력이었다. 맞서 싸우기보다 밀리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태도가 형사의 기본 자세로 여겨졌다.

이런 맥락에서 당시 형사들 사이에 회자되던 좌우명은 단순하다. “원한을 남기지 말라(Do not earn grudge).” 수사는 적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1911년 런던 형사들의 모습은 오늘날의 수사 기법과는 다르지만, 범죄를 이해하고 사람을 읽으려는 본질적 태도만큼은 지금도 유효하다. 복장과 도구는 시대에 따라 바뀌었지만, 수사의 핵심은 여전히 관찰과 추리, 그리고 현장에 스며드는 능력에 있다는 사실을 이 오래된 사진들은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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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겸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부총재, 이실학회 창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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