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칼럼] 라오스야구협회 캄파이 회장이 안 계셨다면…
오늘은 라오스 분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 분은 내가 2017년 라오스에 들어간 지 3년만에 만나 정중하게 라오스야구협회 초대회장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던 분이다. 2014년 SK와이번스 야구단에서 퇴임하고 홀로 라오스로 들어가 긴 시간 열악한 환경에서 선수들과 함께 야구했다. 너무 힘든 상황이었지만 야구가 없는 나라에 야구를 전파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라오스 정부는 초기 2년 동안 여러번 요청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만나주지 않았다.
긴 시간이 흘러 라오스 정부에서도 나에 대해 조사를 끝내고 3년만에 만나 주었다. 그때 나는 야구협회 설립과 야구를 할 수 있는 부지를 부탁했다. 그 당시 라오스올림픽 조직위원으로 있던 셈폰의 상관이 캄파이 회장이다.
캄파이 회장을 라오스야구협회 초대회장으로 초빙해서 지금까지 함께 라오스 야구를 이끌어 가고 있다. 캄파이 회장은 오랜 동안 수파누옹국립대학 총장을 맡았다. 한국과의 교류도 상당히 많았다. 처음 캄파이 회장과 대화를 나누는데 한국의 대도시는 대부분 다녀갔다며 자랑한다. 특히 제주도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입에서 침을 튀겨가며 “원더풀, 원터풀” 하면서 부러워한다.
캄파이 회장은 무엇보다 라오스 국가대표 남녀 선수들을 사랑으로 보듬어 주고 자식보다 더 아껴주고 있다. 이런 성품을 지닌 캄파이 회장은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감독님께서 활동하는 날까지 부족하지만 라오스야구협회장으로서 최선을 다해 함께 하겠다”고 한다. 이렇게 약속했던 캄파이 회장이 어느덧 7년이 되는 지금까지 자기 일보다 더 열정적으로 나와 라오스 야구 그리고 국가대표 남녀 선수들을 도와주고 있다.
이번에 루앙프라방에 야구팀을 창단하게 된 것도 캄파이 회장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만큼 캄파이 회장은 라오스에 야구를 적극적으로 보급시키기 위해 최일선에서 뛰어 다니고 있다. 그의 노력과 헌신으로 꿈에도 그리던 아시안게임에서 라오스 최초 첫 승을 올렸다. 구기종목 사상 처음으로 야구팀이 최초로 본선에 올라가는 기적을 만들었다.
캄파이 회장은 “절대 부담 갖지 말고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라도 이야기 하라”며 내 손을 잡는다. 캄파이 회장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지난 7년 동안 국내와 해외로 아무 차질 없을 정도로 편안한 마음으로 라오스 국가대표선수들을 데리고 라오스 전국을 다니고 있다.
캄파이 회장이 없었다면 내가 지금처럼 라오스 국내와 해외로 경기하러 다니는 것은 아마 불가능 했을지 모른다. 특히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이나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캄파이 회장이 앞으로도 계속 라오스 야구를 위해 옆에서 힘을 써주고 함께 해주길 바란다. 더 많은 야구 꿈나무들이 캄파이 회장의 도움으로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이렇게 훌륭하고 멋진 캄파이 회장 덕분에 나는 80대까지 라오스 선수들과 함께 남쪽의 싸와나켁 그리고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과 북쪽의 루앙프라방 등 국내와 해외로 뛰어 다닐 계획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잘하는 야구를 갖고 마음껏 자라나는 유소년들과 라오스 국가대표 야구인들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내 지식과 경험을 전해주고 싶다. 캄파이 회장과 함께 하면서 즐겁게 남은 삶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