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진상 제대로 알려면

<구월, 도쿄의 거리에서> 표지

[아시아엔=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 <제국의 위안부> 저자] 관동대지진에서의 조선인 학살에 대해 직접 알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쉽게 읽히면서도 사태를 이해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속이 불편해질 만큼 끔찍한 이야기들이 이어지지만, 조선인들을 무차별 폭력으로부터 지키려 했던 일본인의 이야기나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것으로 속죄해 온 이들의 이야기도 담겨 있어서, 조금은 마음정화도 된다.

나는 오래 전에 일본이 이 문제에 대해 공식 사죄를 하면 좋겠다고 쓴 적이 있다. 바로 <제국의 위안부>에서다. 이 문제 자체를 깊게 다루진 않았지만 다른 논문에서 ’지배자의 공포‘에 대해 언급한 무렵이기도 해서, 차별과 제거욕망을 만드는 ‘지배’의 문제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으로 이 사건이 일본의 식민지지배 사죄의 중심에 놓이기를 바라면서 언급했다.

하지만 일본은, 정부도 국민도 아직 그 준비가 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참사 ‘100주년’이 특별히 유감스럽기도 하다.

다만, 사죄란 사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 그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무조건적 비난이 현 상황을 호전시킬 것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더 밝혀져야 할 게 많지만 우선은 희생자 숫자

한국에선 대부분 사람들이 조선인 희생자가 6000명 이상이라고 믿고 있지만, 이 ’양심적‘인 책조차 그 숫자는 ‘1000명 단위‘ 일 것이라고 말한다. 신고/입건된 사건의 사망자는 233명이지만 신고가 안/못 된 희생자까지 넣어서 생각하면 그럴 것이라는 것. 한국의 피해자 조사에서도, 인명이 특정된 건 아직 수백명 수준이다.

물론 수천명이 수백명이 된다 해서 사건의 심각성이 경감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사태를 만든 ’구조‘자체이니 말이다.

‘6000’이라는 숫자는, 관동대지진 사태가 실은 10만명 이상의 일본인들이 희생당한 자연재해였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 오히려 현실미를 갖는 것 아닐까 싶다. 당시 지진으로 인해 무려 30 만채 가까운 집들이 불탔고, 사상자 90%는 화재가 원인이었다는 통계도 있다.

그리고 또하나. 이 때 자연재해가 아닌 인간폭력의 희생자가 된 이들 중엔 조선인뿐 아니라 중국인, 그리고 일본인 사회주의자/아나키스트들도 있었다는 점이다. 끔찍한 국가/민중 폭력의 대상은 꼭 조선인만이 아니었다.

1910년, 한일합방의 해는 일본에선 이른바 대역사건이라는 명목으로 사회주의자들이 일시에 검거된 해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해엔 처형이었다. 당시 국가폭력은 내외부를 가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13년 후 일본인 아나키스트가 백주에 살해당한 것도, 천황제를 위협하는 공산주의-이른바 ’불온’ 사상을 조선인들에게 주입시킨 것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대지진 2년 후에 공산주의자들을 억압하는 치안유지법이 공식적으로 시행된 건 그런 연장선상의 일이다. 조선인 학살도 그런 역사 속에 놓고 봐야 조금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일본은 가난한 사람들이 ‘적화’되기 쉽다고 생각했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사태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혼란한 정국에서의 정보 오발신이 낳는 피해’는 특히 과거 일만도, 남의 일만도 아니다.

<구월, 도쿄의 거리에서> 원저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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