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하 교수 “홍범도와 정율성 논란 자체에 회의적인 까닭”
얼마 전에 쓴 적도 있지만 지금은 기억전쟁보다도 머리 맞대고 해결해야 할 더 중요한 사안이 많다는 점에서 나는 홍범도와 정율성 논란 자체에 회의적이다.
하지만 홍범도가 소련공산당이었기 때문에 추앙되면 안 된다는 생각은 일제시대에 저항한 이들 대부분이 공산주의 세례를 받았다는 기본상식을 몰라서 일어나는 일이다.
말하자면 현재의 시각 혹은 상황에 기대어 과거를 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동시에, 독립운동가면 다 공산주의자였던 것도 아니듯, 안온한 일본유학생이었다고 해서 다 친일파였던 것도 아니다.
과거의 인물을 우상화하거나 그 반대로 너무나 쉽게 부정하는 건, 과거를 관념화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치적‘도 ‘죄상’도 반쯤은 우연의 결과물이라는 걸 알게 되면 지나친 규탄이나 영웅 ‘발굴’(신화 만들기)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
동시대 문학은 그런 속 사정을 잘 보여주는 최상의 자료 중 하나다. ‘허구‘를 전제로 쓰는 만큼 ’무책임하게‘ ’진실’을 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우휘 <불꽃>의 주인공도 할아버지의 밀고로 ‘학병‘으로 나갔고, 결과적으로 구조적 친일파(라기보다 체제협력파)가 되었지만, 그건 그저 어머니가 대학에 가라고 해서 대학에 간 결과였다.
다음은 <불꽃>의 일부다.
고향에 돌아 오자 그는 어머니가 주는 얼마간의 돈을 가지고 해주 가까이서 어업조합장을 지내고 있는 외조부뻘 되는 집으로 도망을 갔다. 며칠을 지낸 후 현은 까닭 모를 어떤 범죄의식에 못 이기기 시작했다.
(이처럼 엄습해 오는 불안감은 무엇일까. 울타리다. 울타리 안에 들어 있는 것이다. 거대한 감옥으로 화한 울타리 안에서 뼈에 젖어든 옥 안의 터부. 그걸 범하는 죄인의 불안. 날아올 간수의 채찍, 마련된 옥 안의 옥)
하나의 길은 있었다. 그러나 현이 이 울타리를 벗어나기에는 둘레의 담장이 너무나 높았다. 다만 숨어 있는 죄인일 수밖에 없었다.2주일 후 현은 날카로운 눈초리의 형사의 방문을 받았다. 그리고 기한이 넘은 지원서에 이름을 써넣어야만 했다.
불안의 해소, 그것은 노예의 안도, 죄인의 굴종.
(중략)
집으로 돌아오자 자기가 붙잡힌 것은 유능한 일경의 조직망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할아버지는 현의 도주가 다음해 중학에 들어가게 될 둘째아들 영철에게 미칠 영향을 두려워했던 것이다.그러나 현은 할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자기 탓으로 어린 삼촌 영철에게 화가 미친다는 것은 현의 본의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P고을의 몇 친구와 함께 떠나게 되는 전날, 현은 조용히 어머니와 함께 지냈다. 어머니는 대학에 가라고 이른 권고의 용서를 빌었다. 더욱 현 모는 현의 나이가 꼭 돌아간 남편의 나이와 일치하는데서 어떤 불길을 느끼고 몸을 떨었다. 현은 어머니를 달래 쉬게 하는 데 땀을 흘렸다. 벽을 보고 돌아누운 현 모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기도만 드리고 있었다.
(중략)
현에게는, 몇 갈래로 찢겨 서로 엇먹고 켕기는 소용돌이가 모두 현실의 정곡에서 빗나가고 있다고밖에 보이지 않았다. 해방이란 앉아서 얻어진 것, 그러므로 호통을 칠 이유도 없었다. 아무에게도 나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없었다.
따지고 보면 있어야 할 것은 오직 얼굴을 붉히는 부끄러움과 조심성 있게 건네야 할 조용한 어조뿐이었다. 그런데 오고 가는 건 무수한 돌멩이와 고막이 터질 노호. [선우휘(1922~1986). <불꽃>(1957) 가운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