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

[아시아엔=이우근 변호사, 숙명여대 석좌교수] 성서의 역사는 연면한 해방의 기록이다. 천지창조는 혼돈의 카오스를 깨뜨리는 해방의 코스모스였고, 이스라엘의 이집트 탈출은 권력의 억압과 착취로부터의 해방이었다. 또 뭇 예언자들의 선포는 우상으로부터 영혼의 자유를 외친 해방의 목소리에 다름 아니었다.

사도 바울의 생애는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그 거대한 두 산맥에서 정신의 자유를 찾아가는 해방의 긴 여정이었다. 요한계시록의 절정인 새 하늘과 새 땅은 옛 하늘과 옛 땅의 사슬을 풀어헤쳐 궁극적인 영혼의 자유를 성취하는 이상향(理想鄕)의 묵시다.

​북녘땅은 일가족 세습독재에 무릎 꿇은 동토(凍土)가 되었다.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한 대한민국 국민은 독재권력을 무너뜨릴 수 있는 주권을 가졌지만, 또 한편 선동정치와 포퓰리즘에 쉽사리 흔들리는 취약한 체질을 함께 지녔다.

그 취약한 체질을 파고들며 인간 정신의 자유를 좀먹는 새로운 억압체제가 자라나고 있다. 인간을 정신적‧물리적 노예상태로 만들어 억압과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국민을 속이고 선동하는 정치권력이나 독재체제만이 아니다.

​사상과 이념의 도그마, 과학기술 만능의 지식권력, 하나님 앞에 서야 할 인간 실존을 근본주의의 제단 앞에 무릎 꿇리는 종교권력, 세계와 삶의 심층을 향해 날아가야 할 예술혼을 덧없는 인기와 상업적 이익으로 낚아채는 문화권력 따위도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는 정신적 억압의 사슬임이 분명하다.

그 억압의 뿌리는 남들보다 우위에 서서 그들을 지배하려는 교만이요, 그 교만의 죄성은 거짓과 탐욕의 쌍생아를 거느리고 다가온다.

광복 78주년을 맞으면서 지금 우리가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 곰곰이 돌아본다.

“사로잡힌 자에게 해방을, 눈먼 이에게 광명을, 억눌린 자에게 자유를!”(이사야 42:7, 누가복음 4:18).

무슨 정치구호나 사회운동의 슬로건이 아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선포요, 공생애에 나선 예수님의 첫 선언이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참 해방이, 참 자유가 있다’고 믿는 것이 신앙의 진리다(로마서 8:2).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권면한다.(갈라디아서 5:1) 우리가 아직도 교만과 거짓과 탐욕에 얽매어 종의 멍에를 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교만과 거짓과 탐욕의 멍에를 끊어버리지 못하면 광명한 진리의 자리에 나아갈 수 없고, 진리 없이는 참 자유도 참 해방도 누릴 수 없다. 교만과 거짓과 탐욕으로부터의 해방이 진정한 해방이다.

<수용소군도>를 쓴 솔제니친은 “진리의 한 마디가 전 세계보다 무겁다”고 외쳤다. 그 한 마디를 예수님이 말씀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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