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삶의 토대가 흔들릴 때

“지진이나 태풍은 일시적이지만, 인간이 쌓아올린 과학 기술 정치문화 제도종교의 바벨탑들은 이 세계를 끝모르는 파멸로 이끌어갈 것이다. 과학 기술 정치 문화 제도종교를 비난하는 말이 아니다. 그 속에 깃든 인간의 교만을 지적하는 것이다.”(본문 가운데) 사진은 피터르 브뤼헬작 ‘바벨탑’(1563), 오스트리아 미술사박물관, 114㎝×155㎝

[아시아엔=이우근 변호사, 숙명여대 석좌교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삶의 토대가 흔들리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지진과 해일이 세계 곳곳을 덮치고 한쪽에는 극심한 가뭄이, 다른 쪽에는 견디기 어려운 무더위가 오래도록 이어진다.

그렇지만 삶의 토대가 흔들리는 것은 비단 자연현상이나 기후변화 때문만이 아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이성과 진보의 시대가 될 것으로 기대했던 20세기는 전쟁과 독재로 얼룩진 야만의 시대로 끝나고 말았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인간 이성에 대한 믿음을 철저히 배반했고, 한국전쟁 이후의 냉전체제는 이념의 도그마로 분열과 갈등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제국주의, 나치즘, 파시즘이 패배한 자리에 권력을 우상화하는 반민주적 독재체제가 곳곳에서 솟아났고, 그에 대한 저항과 혁명의 투쟁이 그치지 않았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혼란의 소용돌이는 계속되는 중이다. 9·11테러, 아프간전쟁이 새로운 세기를 처음부터 공포와 불안으로 몰아 넣었지만, 공포와 불안은 그것 때문만이 아니다.

​으리으리한 호화 아파트 뒤로는 삶의 토대를 잃고 하루하루 어렵사리 살아가는 빈민들의 판자촌이 허물어질 듯 서있고, 화려하게 치솟은 사찰이나 교회당 곁에는 타락의 끝을 달리는 환락가가 함께 자리 잡았다. 정치와 이념의 대립, 종교와 문화의 갈등, 사회적 불공정과 양극화, 그 모순과 갈등 속에서 우리들 삶의 터전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는 중이다.

우주로까지 내뻗은 기술의 발전, 전통적 학문의 영역을 허무는 인문과 과학의 융합, 지구촌의 안녕을 기획하는 국제정치의 노력 등으로 세계평화와 인간구원을 이룩할 수 있다는 믿음은 더 이상 힘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 공허한 믿음은 결국 새로운 바벨탑을 쌓으려는 인간의 교만에서 나온 환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인간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선지자 이사야는 인간의 교만을 향해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선포했다. “땅이 깨지고 깨지며, 땅이 갈라지고 갈라지며, 땅이 흔들리고 흔들리리라.”(이사야 24:19 ). 땅을 가르고 깨뜨리고 흔드는 것은 지진이나 태풍만이 아니다.

지진이나 태풍은 일시적이지만, 인간이 쌓아올린 과학 기술 정치문화 제도종교의 바벨탑들은 이 세계를 끝모르는 파멸로 이끌어갈 것이다. 과학 기술 정치 문화 제도종교를 비난하는 말이 아니다. 그 속에 깃든 인간의 교만을 지적하는 것이다.

​인간의 교만으로 쌓아올린 유토피아의 바벨탑을 허물고 공의의 하나님 앞에 겸허히 엎드릴 때, 하나님은 새로운 소망의 음성을 우리에게 들려주실 것이다.

사막처럼 메마르고 광야처럼 황량한 시대 속에서 그 소망의 음성을 기다린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물을 흘리리라.”(이사야 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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