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젖먹이 신자’와 ‘밥 먹는 신앙인’

밀레의 ‘만종’

[아시아엔=이우근 변호사, 숙명여대 석좌교수] 신약성경 히브리서는 저자가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고 있다. 히브리서를 바울이 썼다는 견해도 있고, 누가 또는 바나바가 썼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고린도교회에서 바울의 후임자로 활동한 아볼로가 썼다는 견해도 유력하지만, 그 저자를 확실히 알 수는 없다. 그래서 주후 3세기의 교부 오리게네스는 “오직 하나님만이 히브리서 저자를 아신다”고 말했다.

​히브리서는 신앙의 수준을 젖 먹는 단계와 밥 먹는 단계로 구분한다.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義)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知覺)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히브리서 5:12~14).

​신앙의 연륜이 깊어지면 마땅히 남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야 할 터인데, 오랜 신앙생활에도 불구하고 아직 초보의 단계에 머물러 오히려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신자들을 꾸짖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젖먹이 크리스천’들과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밥을 먹는 단계의 ‘성숙한 크리스천’을 구분한 것이다. 젖먹이 크리스천은 축복과 형통을 바라는 신자, 밥 먹는 크리스천은 고난과 연단으로 십자가를 짊어지는 신자라고 할 수 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교회의 신자들에게 똑같은 질책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 육신에 속한 자 곧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으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린도전서 3:1~3).

​바울은 시기와 분쟁으로 서로 다투는 신자들을 육신에 속한 자 곧 젖먹이 신자로 본 것이다. 시기와 분쟁은 남보다 우위에 서려고 하는 교만 곧 자신의 축복과 형통을 소원하는 이기적 탐욕의 필연적 결과다.

기복(祈福)이나 형통은 교만과 이기심에서 솟아나는 탐욕이다. 기복과 형통은 젖먹이 신앙의 특징이고, 연단을 받아 십자가의 길, 고난의 여정을 묵묵히 걷는 믿음은 밥 먹는 신앙의 특징이다.

​축복과 형통의 약속이 있기에, ‘그렇기 때문에’ 믿는 것이 젖먹이 신앙이라면, 고난과 역경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밥을 먹는 신앙이다.

소박한 식사와 감사기도(Eric Ernstrom) 

‘그렇기 때문에’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젖먹이 신자와 밥 먹는 신앙인을 구별하는 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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