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희소식도 ‘때와 장소’ 가려서
잠언 27장
진심은 통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진심이 언제나 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전하지 안느니만 못할 때도 있습니다. 아무리 진심이라도 오해를 빚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실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진실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문제는 진실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자기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같이 여기게 되리라”(잠언 27:14)
나는 축복했는데 상대는 저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복을 빌었지만 욕을 한 것과 같은 효과가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들 고요하게 하루의 시작을 준비하는 시간에 큰 소리를 내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기쁘고 좋은 소식을 전한다면서 아침 일찍부터 남의 집 벨을 눌러대거나 출근하는 바쁜 사람을 붙잡으면 아무리 축복의 메시지라도 사람들은 저주같이 받아들일 것입니다.
복음은 복된 소식입니다. 잠언 27장 14절의 말씀처럼 복된 소식을 전하는 우리가 때와 장소와 사람을 지혜롭게 분별하지 못한다면 복음이 소음이나 잡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복음의 내용을 듣기 전에 전하는 사람의 태도에서 이미 복음이 어떤 것인지를 읽는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도에 열정적인 것과, 자신의 전도 열정에 도취되어 있는 것은 다릅니다. 자신의 열정에 도취되면 상대의 상황과 상태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저 나 편한대로, 내 습관대로, 내 방식대로 열정을 쏟게 됩니다. 전도가 왜 잘 안될까요? 십자가의 도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인데, 그 도를 전하면서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햇볕이 아무리 좋아도 햇빛 알러지가 있는 사람에게 일광욕을 권할 수는 없습니다. 정말 상대에게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햇볕의 따사로움을 선물할 다른 방법을 고민할 것입니다. 그 관심 속에서 이미 상대는 햇볕의 따사로움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요? 하나님 사랑의 따스함이 전해지는 것도 마찬가지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