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자기 정당화’와 ‘명의 도용죄’
잠언 21장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라는 말이 있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보다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자기정당화나 자기합리화는 자신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이는 것과 다름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속이고, 또 스스로에게 속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속일 만큼 머리가 좋은 걸까요? 아니면 스스로에게 속을 만큼 어리석은 걸까요?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잠언 21:2)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게 제 눈에는 다 옳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2021년 <뉴욕타임스>에는 ‘내로남불’이라는 단어가 실려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저 정치인들의 이중성에만 국한된 말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는 단어가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도 ‘어떻게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그렇게도 잘 보면서 너의 눈 속에 들보가 있는 걸 모르냐’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람의 행위는 자기의 눈에는 모두 옳게 보이나, 주님께서는 그 마음을 꿰뚫어 보신다”(잠언 21:2, 새번역)
신앙생활은 참 불편한 것입니다. 나를 꿰뚫어보시는 하나님의 시선을 매일 마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나의 은밀한 생각까지도 감찰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나를 읽는다고 봐야 합니다. 나를 읽으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솔직할까요?
어쩌면 신앙생활이란 자칫 자기합리화의 전문가가 되고마는 위험한 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를 속일만큼 똑똑한 사람이 스스로에게 속은 줄도 모르는 멍청한 상태로 평생을 살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하나님과 성경만큼 강력한 자료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실까요? 고난이 아니면 자기중심성으로 똘똘 뭉친 우리의 자아가 좀처럼 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처벌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자신을 상대로 벌이던 사기행각에 대한 처벌인 것입니다.
나를 정당화하는데 하나님의 명의를 도용하는 명의 도용죄에 대한 징계입니다. 스스로를 그만 속이고, 스스로에게 그만 속으라는 하나님의 강력한 외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