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인생길은 알고 가는 길이 아니라 믿으며 맡기고 가는 길”

“삶의 종착지는 똑같습니다. 죽는다는 것입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이지만 끝은 너무 명확하게 보인다는 게 이 길의 특징입니다.” 사진은 박노해 시인의 <길>에서 


잠언 16장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 16:25)

진학이나 진로, 결혼과 같이 인생의 중요한 일을 선뜻 결정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그 길의 끝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좋을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처음에 기대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서 실망하는 경우를 적지 않게 겪지 않습니까?

사람은 가보지 않은 길의 끝을 절대 알 수 없습니다. 문제는 인생이 한번뿐이라서 모든 길을 다 가본 후에 선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사람은 자기 인생길이 초행길이라는 것입니다.

시편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시 146:3-4)

사람들끼리 인생에 대해 논하는 이야기가 오십보백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잠 16:3)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인생길은 알고 가는 길이 아니라 믿고 가는 길이고, 맡기고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새번역 성경은 잠언 16장 25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바른길 같이 보이나, 마침내는 죽음에 이르는 길이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죽음에 이르는 특정한 길이 있다기보다 모든 인생길은 다 죽음에 이르고 맙니다.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어떻게 살아도 삶의 종착지는 똑같습니다. 죽는다는 것입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이지만 끝은 너무 명확하게 보인다는 게 이 길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 있습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미래를 준비하는데는 심혈을 기울이지만, 확실하게 보이는 죽음이라는 미래를 준비하며 사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입니다. 멀리 있지만 뻔히 보이는 그 문제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어야만, 한 치 앞에 있는 보이지 않는 문제들이 풀리게 되는 것, 그게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설계해 두신 구조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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