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타인의 눈에서 왜 티가 보이는 걸까요?”
시편 19편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시 19:11-12)
박사학위가 몇 개씩 있는 사람도 깨우치기 어려운 지식이 있습니다. 자기 허물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허물과 오점을 정당화하고, 남의 허물을 지적하는데는 박사일지 몰라도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데는 미숙합니다.
자기 허물, 영안이 열려야 보이는 나의 실체입니다. 어쩌면 귀신을 보는 것보다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은 베풀면서도 저절로 계산을 하고 희생을 하면서도 이기적이며 겸손해졌다면서도 스스로 우쭐해지는 구제불능의 이중성을 가지고 삽니다. 신앙을 가진 후 변화되고 성숙했다면서 아직 변화되지 못한 사람을 닥달하고 가르치고 미숙한 사람을 판단하며 말씀으로 경고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경고를 들어야 할 사람은 언제나 나입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태복음 7:3)
타인의 눈에서 왜 티가 보이는 걸까요? 볼록한 반사면에 비친 물체는 늘 작아보입니다. 볼록거울은 언제나 축소된 정립 허상을 만듭니다. 눈동자는 볼록한 반사면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의 눈을 볼 때마다 보이는 티는 사실 내 들보의 축소된 정립 허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들보가 비치는 건지도 모르고 타인의 티를 얼마나 불편해 하는지 모릅니다. 나에게 똑같은 것이 있으니까 보이는 것인데 말입니다.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시편 19:8)
하나님의 말씀은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가 원래 내 들보였다는 것을 보게 해주는 특별한 렌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