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말씀이 나를 읽을 때까지
시편 1편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 1:1-2)
대부분의 사람들은 묵상을 잘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탁월하기까지 합니다. 하루 종일 주식 차트를 본다든가, 업무를 생각한다든가, 돈 걱정을 하는 것도 묵상입니다. 또는 남이 나에게 던진 말을 곱씹고 또 곱씹기도 합니다. 사람의 말을 묵상하는 것이죠.
골프나 당구같은 스포츠에 푹 빠져 지내는 것도 일종의 묵상이고, 자기 연민, 우월의식, 열등의식 등은 나를 묵상하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방법을 몰라서 ‘말씀 묵상’을 못하는 게 아닙니다. 묵상의 대상이 너무 많거나, 묵상하지 말아야 할 것을 묵상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말씀 묵상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방법을 배우기보다는 내가 평소에 묵상하고 있는 대상들을 정리해봐야 합니다. 나는 주야로 무엇을 묵상하는가? 묵상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것에 대한 점검이 먼저입니다.
시편 2편 1절에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꾸미다’라는 히브리어 단어가 시편 1편 2절의 ‘묵상하다’와 같은 단어입니다. 따라서 “어찌하여 민족들이 헛된 일을 묵상하는가”로 읽어도 무방합니다. 헛된 일을 묵상하는가? 의미있는 일을 묵상하는가? 이처럼 묵상은 방법의 문제이기보다 대상의 문제입니다.
내가 주야로 묵상하는 것, 그것이 내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하루 종일 맛과 레시피로 머리와 가슴이 가득 찬 사람은 결국 요리를 잘 하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고 주야로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이 다른 것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성경만 읽고 말씀 구절만 되뇌인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말씀을 읽다 보면, 말씀이 나를 읽어가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말씀을 읽지만, 동시에 말씀도 나를 읽는다는 것입니다. 주야로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그렇게 나를 읽는 말씀과 더불어, 그 말씀에 비추어, 그 말씀과 관련하여 내 일상의 모든 것들을 읽어내려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면 생각이 변하고, 말씀을 적용하면 삶이 변하고, 말씀을 나누면 주변과 세상이 변합니다. 이 변화를 경험하는 일, 말씀에 의한 변화, 이것이야말로 말씀을 묵상하며 누리는 진정한 ‘복’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