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칼럼] 한국야구 WBC 탈락과 ‘日이치로-고쿠보 대화’
한국야구팀의 WBC 대회의 부진과 관련해 3월 17일 ‘한국 야구는 철학의 부재를 고민해야 한다’라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OSEN 백종인 기자가 쓴 기사다. 기사 내용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이치로 선수의 인터뷰 기사를 보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치로는 지독할 정도다. 병적으로 보일 만큼 집착한다. ‘준비의 준비’라는 말도 있다. 게임 준비를 위한 훈련까지 철저하게 준비한다는 말이다. 같은 선수가 봐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언젠가 고쿠보 히로키(전 일본 대표팀 감독)가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치로 상은 어느 정도 기록을 목표로 합니까?”
그러자 돌아온 답변이다. “고쿠보 상은 숫자를 남기기 위해 야구를 합니까? 나는 마음속에 연마하고 싶은 돌이 있습니다. 야구를 통해 그 돌을 빛나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준비를 위한 준비까지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이치로 선수와 고쿠보 히로키 감독과의 대화를 읽으며 문득 평생 도자기를 만드는 장인이 제자에게 말했다는 일화가 떠올랐다. 제자가 보기에는 멀쩡한 고려청자를 휙 둘러보고는 가차 없이 깨버리는 스승을 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왜 힘들게 만든 고려청자를 그렇게 쉽게 깨버리십니까? 제가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스승이 대답했다. “이미 이 도자기의 완벽한 존재는 내 머릿속에 존재했다. 그러나 내가 빚어낸 도자기의 실체는 내가 이미 만들어 놓았던 완벽한 도자기가 아니기에 나는 그것을 깨버리는 것이다.”
본질의 속성을 탐구하고자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적 관점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일화이다. 인간이 추구해야 되는 진정한 가치를 설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야구와 충분히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야구를 할 때 오랜 훈련과 지도를 통해 선수들은 본인이 머릿속에 그려둔 완벽한 모습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힘든 시즌이 모두 끝나고 스프링 캠프 동안 시즌 중에는 만들지 못한 완벽한 모습에 가까워지기 위한 훈련이 꼭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팀과 선수들은 반복훈련, 체력훈련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심지어 가장 절체절명의 순간에 담대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미신과도 같은 생각에 담력 훈련과 같은 다소 비합리적인 훈련 등을 반복하면서 선수 스스로 생각하고 본인이 잘못된 동작을 수정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과 기회를 놓쳐버리는 경우가 있다.
현장을 나와 재능기부를 위해 전국을 돌면서 어린 선수들에게 하는 나의 단골 멘트가 있다. “몸으로 아무 생각 없이 100번 반복하는 것보다는 10번을 반복하고 1번 깊이 생각하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이나 실수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훈련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인 방법이다.”
그리고, 수비하면서 자기에게 공이 올까 두려워하지 말고 실수해도 되니 즐기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하라는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하고 있다. 이처럼 스스로 생각하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때 선수들 기량은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할 수 있다. 그리고 야구가 삶 속에서 고통이나 두려움을 느끼는 힘든 직업이 아니라 그 자체가 행복이며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말하곤 한다.
기본에 충실하되 그 기본을 선수들의 개성과 신체에 맞게 발전시켜 자기화하거나 자신만의 ‘유일한 브랜드’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훌륭한 코치다. 단순히 기술을 잘 가르치고 야구 시합을 잘하게 만드는 일차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선수 스스로 생각하게 하고 야구가 그들의 삶 속에 행복을 느끼게 만드는 코칭이 이제 필요하다. 훌륭한 인성을 갖추고 선수들이 힘들어 하는 것을 공감할 수 있는 코칭이 바로 그것이다.
아름다운 고려청자를 머릿속에서 그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고, 그것을 정성껏 준비하여 현실에서 빚어낼 수 있게 하는 코칭이 바로 지금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