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칼럼] “제물포고 기주흥 포수, 화이팅!”
지난 3월 2일 한 신문기사가 눈에 띄었다. ‘2018년 해체 서흥초 야구부 마지막 멤버, 제물포고 진학했다’는 기사였다. 당시를 생각하면 정말 가슴 아픈 일이 많았다.
필자가 미국생활 10년을 청산하고 귀국 후 처음 팀이 인천에 연고를 둔 SK와이번스였다. 인천과는 어린시절부터 성인까지 그렇게 연관이 많지 않았다. 미국생활을 모두 끝내고 한국에 들어와 처음 지도자생활을 하면서 제2의 고향이 인천이 되었다. SK와이번스에서 8년 동안 지도자생활을 청산하고 지금까지 인천에서 살고 있다.
그 인연 때문인지 2018년 인천의 야구 명문학교인 서흥초 야구부가 해체된다는 소식에 너무 안타까웠다. 서흥초 학부모와 지도자 그리고 졸업생 야구 후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서흥초 야구부가 해체될 위기에 놓였다”며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인천과는 아무 연고가 없고 또 인천에서 자라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구인으로서 그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학부모와 지도자 그리고 선수들과 동문들 하고 같이 학교장을 찾아가고, 언론사에 호소도 하고, 인천시교육청까지 찾아갔다. 어린아이들이 피켓을 들고 호소했던 사진이 언론에 나오기까지 했다. 기억이 생생하다.
결국 2018년, 37년 역사를 자랑하는 인천 동구 서흥초등학교 야구부가 폐지되었다. 야구부 해체 이후 선수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당시 서흥초 야구선수 중에 기주흥 포수가 올해 제물포고에 진학했다. 해체 당시 기주흥 선수는 5학년임에도 팀의 핵심 주전포수였다.
기주흥 선수의 아버지인 기창도씨에 의하면 주흥이는 서흥초가 해체될 때까지 팀의 안방을 책임지며 촉망받던 선수였다. 어느덧 5년 세월이 흘러 16살이 된 기주흥 선수가 올해 제물포고로 진학했다는 소식을 부친으로부터 듣게 되었다.
비록 팀은 해체됐지만, 당시 5학년이던 기주흥은 서화초등학교로 전학한 이후 졸업과 동시에 상인천중학교로 진학했다. 중학교에서도 안방을 지킨 기주흥은 착실하게 3년을 보낸 후 올해부터 제물포고 멤버로 고교 무대에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주흥 선수 아버지인 기창도씨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나 역시 너무 고맙기만 했다.
어린 나이에 많은 아픔을 경험한 기주흥 선수는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본인이 갖고 있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노력하며 여기까지 달려왔다. 기주흥 선수는 지금보다 미래가 더 기대되는 선수다.
앞으로 기회 될 때마다 기주흥 선수를 만나 야구선수로서 어떻게 운동하고 또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고, 어떻게 팀을 이끌어 가며 어떻게 경기에 임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도 하나씩 이야기해주려 한다. 어린 시절 팀이 해체되는 아픔을 극복하고 흔들리지 않고 야구를 계속해온 기주흥 선수에게 적으나마 멘토 역할을 해주려 한다.
기주흥 선수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