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 칼럼] 친명계와 비명계 ‘순망치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됐습니다. 영장실질심사 결과 영장판사가 구속사유가 없다고 판단해서 기각시킨 게 아닙니다. 2월 27일 국회에서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부결되었습니다. 담당판사는 기각 사유를 “회기 중에 있는 국회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부결됐으므로 본건 청구는 이유 없게 되었다”라고 밝혔습니다.
‘쪼개가 영장 청구’를 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 대표는 불구속상태에서 ‘판사 앞에 서’게 됩니다. 대장동 민간업자들에게 7886억원의 막대한 이익을 몰아줘 성남도시개발공사에 4895억원 손해를 끼친 배임 혐의와 두산건설 등 4개 기업의 청탁을 들어주면서 성남FC에 후원금 133억원을 내도록 한 제3자뇌물 혐의는 법정다툼으로 넘어갔습니다.
사상 첫 제1야당 대표 구속이라는 최악의 경우는 피했지만 민주당은 당내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불씨는 체포동의안 처리 과정에서 민주당에서 서른 표 이상 찬성표가 나온 겁니다. 찬성이 반대보다 많은 ‘아슬아슬 부결’에 성난 강성 지지자들이 불을 질렀습니다. 이재명 대표가 표결 다음 날 자제와 중단을 당부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강성 지지자들은 ‘배신자’들로부터 이재명 대표를 지키자며 ‘문자폭탄’ ‘가결 표결 명단 돌리기’ 등 ‘이탈자 색출작업‘에 앞장섰습니다. ‘무더기 이탈’이 ’조직적 반란‘이라며 이낙연 전 대표 영구제명까지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체포동의안 표결 다음날 민주당 청원게시판인 ‘국민응답센터’에 이낙연 대표 영구제명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청원은 올라온 지 이틀 만에 5만명이 넘게 동의했습니다. 국민응답센터에 올라온 청원은 권리당원 2만명이 동의하면 지도부에 그 내용이 보고되니다. 5만명이 넘으면 지도부가 답을 해야 합니다. 당 지도부는 곤혹스런 상황입니다. 박홍근 원내대표가 “단결과 단합을 저해하는 언행 자제“를 호소했지만 사태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재명 대표, 박홍근 원내대표 등의 자제와 중단 호소만으로는 ‘내부 총질 비명계’를 쫓아내자는 지지자들의 자발적 행동이 멈추지 않을 겁니다. 더구나 ‘선당후사’를 명분으로 내세워 이 대표 사퇴를 강하게 요구하는 비명계가 이를 빌미로 더 강경해질 지도 모릅니다. 당 지도부는 당내 소통 강화로 문제를 풀겠다고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친명-비명 갈등과 대립이 커지면 커질수록 검찰과 국민의힘은 좋아할 겁니다. 구속영장을 재청구하고 싶은 검찰은 민주당 당내 갈등이 수습하지 못할 정도로 악화돼 체포동의안이 가결될 가능성이 높아질 날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여소야대 국회를 자기들 뜻대로 끌어가지 못했던 국민의힘은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야당의 분열을 부추길지 모릅니다.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당이 더 단단히 하나로 되는 것”이라는 박홍근 원내대표의 말처럼 민주당 최우선과제는 소통으로 ”불신과 불안을 잠재우면서“ 통합하는 겁니다. 친명이 이길 수도 있고, 비명이 이길 수도 있지만 ‘순망치한(脣亡齒寒)’입니다. ‘순망치한’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사자성어로 ”입술을 잃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입니다.
춘추시대에 진(晉) 나라가 괵(?) 나라를 치려 하니 길을 빌려달라고 우(虞) 나라에 부탁했습니다. 궁지기(宮之奇)라는 신하가 ‘순망치한’이니 “괵 나라가 망하면 우 나라도 망한다”며 반대했지만 우 나라 왕은 진 나라가 보낸 선물에 눈이 멀었습니다. 길을 빌린 진 나라는 괵 나라를 멸망시켰습니다. 이어서 진 나라는 우 나라도 공격했습니다.
괵 나라가 망했으니 우 나라가 공격을 당할 때 도와줄 나라가 없었습니다. 결국 우 나라 왕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때부터 가까운 사이의 한쪽이 망하면 다른 한쪽도 온전하기 어렵다는 걸 ‘순망치한’이라 부릅니다. 친명-비명은 서로 도우며 떨어질 수 없는 순망치한 관계입니다. 친명-비명 갈등이 도를 넘으면 사이좋게 함께 망한다는 걸 잊어선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