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 칼럼] 이탈하고, 항의는 막고, 충성만 남은 정치

주호영 국민의힘,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미국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먼(Albert Otto Hirschman)은 기업이 쇠퇴할 때 고객들이 보이는 반응을 셋으로 나눠 설명했습니다. 이탈(Exit), 항의(Voice), 충성(Loyalty)입니다. 허시먼은 이 세 반응을 그대로 책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Exit, Voice, and Loyalty』는 우리말로는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출판됐습니다. 이 책의 부제는 ‘퇴보하는 기업 조직 국가에 대한 반응’입니다.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정치나 정당에 대한 시민이나 당원들의 반응도 셋으로 나눠볼 수 있다는 겁니다. 정치가 아무 것도 해주지 않는다며 실망하고 좌절하는 시민이 보이는 반응이 이탈입니다. 자신이 지지하던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실망한 지지자 가운데에서도 이탈 현상이 나타납니다.

떠난 이후 보이는 모습은 조금씩 다릅니다. 정치에 실망해 이탈한 시민은 아예 정치에 무관심해지거나 냉소적이 되기 쉽고 심하면 정치혐오 성향을 보입니다. 특정 정치인과 정당에 보내던 지지를 유보하는 시민은 그 정당과 정치인이 잘 하면 다시 지지하기도 합니다. 아예 다른 정치인이나 다른 정당으로 옮겨가는 시민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 정치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거대 양당 간의 극한 갈등으로 제 구실을 못하고 있습니다. 유일한 진보정당인 정의당은 힘이 빠졌고, 국회 의석이 한 석씩밖에 안 되는 다른 원내 정당들도 대안이 되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정책 경쟁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제3의 대안이 없다보니 양당은 이탈에 대해 무신경합니다.

이탈과 정반대의 성향을 보이는 건 충성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에게서 떠나지 않습니다. 이른바 ‘팬덤’이라 불리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팬덤 정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은 ‘노빠’ ‘문빠’ ‘명빠’ ‘굥빠’ 등으로 낮춰 부르지만,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상대 정치인, 상대 정당을 단순한 경쟁자로 보지 않고 타도해야 할 적으로 보는 지나친 충성경쟁입니다. 지지 정치인을 적극 지킨다고 ‘좌표공격’을 하는 건 오히려 상대 정치인과 잠재적 지지자의 마음을 포기하는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이른바 ‘팬덤’에 갇힌 정치인은 지지의 확장성도 낮아지고 시민에게 미운털이 박히게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정당 구도는 ‘충성’파만 남아있는 양당독점 구도입니다. 국민의힘은 ‘윤핵관’만이 남아 있습니다. 항의의 목소리는 ‘내부총질’이라는 윤핵관의 충성에 밀려 파묻히고 있습니다. 이준석 전 대표는 대표직에서 밀려났고, 유승민 전 의원의 ‘국민의힘에 대한 충성’ ‘보수진영’에 대한 충성‘은 공격받고 있습니다.

2023년 3월에 새 지도부를 구성할 전당대회를 둘러싸고 민심 반영비율을 낮추자는 주장이 유승민 의원을 떨어뜨리기 위해서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원내대표는 의원들이, 당 대표 선거는 당원들이” 뽑자는 게 그럴듯해 보이지만 민심을 떠난 당심이 있을 수 없습니다. 자칫 갈라파고스섬처럼 국민의힘이 민심의 바다에서 고립될 수도 있습니다.

항의의 목소리를 ‘내부총질’로 간주하는 건 민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박지현 비대위원장의 ‘민주당에 대한 충성’은 ‘이재명 후보(대표)에 대한 충성’의 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항의의 목소리를 억누르면 추가로 이탈자가 늘어날 수 있습니다. 충성만으로는 선거의 승리를 기대할 수 없고, 집권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양당이 정신을 차리지 않는 건 어차피 두 당 가운데 어느 한 당이 집권해왔기 때문입니다. 양당 모두에 비판적인 시민은 아예 정치를 외면하게 되고, 낮아진 투표율 아래서 ‘충성’ 지지자들을 많이 동원하는 당이 이기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탈자가 점점 더 늘어나는 조직은 반드시 쇠퇴한다는 게 허시먼이 내린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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