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 칼럼] 일본한테 배워야 할 지역정당…’가나가와 네트워크’
지역정당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나라 가운데 하나가 일본입니다. 일본에서는 1995년 통일지방선거 때 지역네트워크 운동을 벌이는 시민 그룹이 후보자를 내면서부터 지역정당 붐이 일어났습니다. 지역네트워크 운동은 생활클럽생협을 모체로 해서 생활정치를 실천하는 운동을 말합니다. ‘가나가와네트워크운동’, ‘도쿄생활자네트워크’ 등이 대표적입니다.
우리나라 지방의원들이나 시민단체들이 자주 방문하는 ‘가나가와네트’는 도쿄 남쪽의 가나가와(神奈川)에서 여성들 중심으로 활동하는 생활클럽생협입니다. 가나가와네트는 단체의 대표를 정치적 의사결정의 장에 보내는 ‘대리인운동’을 시작하면서 지역정당이 됐습니다. 이들은 대리인 의원의 임기를 2기로 제한하고, 의원보수를 공동관리하고 있습니다.
대리인운동의 취지는 의회제 민주주의를 시민참여를 통해 활성화하는 것입니다. ‘지역문제발견→자율적인 조사→관계자들에 대한 문제제기→토론의 장 만들기→해결책 모색→문제해결’ 과정을 거쳐 지역문제를 의회와 시민운동이 함께 해결하려 모색하는 겁니다. 활동 중심이 의회로 옮겨가면서 시민운동이 약화되는 경향은 아쉬운 점입니다.
지역네트워크 운동의 기본 방침은 생활정치입니다. 생활정치는 선거로 선출된 대표에게 자신의 생활이나 지역의 운명을 전부 맡기지 않고, 시민들이 스스로 참여해 결정하자는 겁니다. 직업적인 정치가만 하는 정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시민 스스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책임을 갖고 자치해가는 것이 생활정치입니다.
지역네트워크 운동은 종전까지 정치인들이 관심 갖지 않아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던 생활과제를 의회의 과제로 만들어 갔습니다. 지방의회가 쓰레기, 먹거리의 안전, 고령자 복지, 어린이, 환경 등의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시민단체 요구는 등한시하던 지방정부도 의원들의 요구에 맞춰 이런 문제들을 점차 정책에 반영하게 되었습니다.
대리인운동은 1977년 도쿄도 의회 선거 때 처음 시도했으나 당선되지 못하고, 1979년 도쿄도 네리마구 의회 선거에서 처음으로 당선됐습니다. 그 뒤 1983년 지바(千葉)현, 사이타마(埼玉)현 등 생활클럽생협이 있는 지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지금은 전국에서 수백 명의 여성의원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여성들의 운동이라는 인상이 강합니다.
일본의 지역정당은 생활클럽생협 계열 지역정당 외에도 지역토착형 정당이 있습니다. 대표적 지역토착형 정당은 오키나와에 근거를 둔 ‘오키나와 사회대중당’입니다. 그리고 개혁적 지방의원들의 연구모임인 ‘지방의원정책연구회’를 기반으로 자치제와 지방분권화, 환경우선을 표방한 ‘무지개와 녹색500인 리스트’ 등도 지역정당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역네트워크 운동은 대리인운동으로 시작해서 지역정당의 단계를 거쳐 전국정당을 지향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1996년 2월 전국의 네트워크 운동단체들이 모여 J네트(local network of Japan)를 결성했습니다. J네트는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지역네트워크 운동의 기초인 생활정치 이념이 전국정당 설립과정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역정당이 지역이익 확보에만 치우쳐 다른 지역의 이익을 해치거나 전국단위 과제들에 소홀할지 모른다는 우려는 기우입니다. 지역정당이 많아지고, 지방선거에서 의미있는 성적을 거두고, 지방정치에서 성과를 많이 내면 전국정당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전국정당이 되지 않더라도 지역정당들의 연대가 필요하기에 지역이기주의에 빠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지역정당이 나타나야 합니다. 지역의 생활정치 과제에 집중하고, 시민참여를 통한 지역문제 해결을 위해 지방선거에 후보자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굳이 지역정당을 만들지 않더라도 유권자단체나 지역결사체 등 지역정치조직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들의 후보자 추천권을 정당 공천권처럼 인정해야 합니다.